갓 출범한 문재인정부 서슬이 시퍼렇던 2017년 6월 8일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 인사가 단행됐다. 고검장 1명과 검사장 3명이 동시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이 났다. 법무부는 인사 배경을 설명하는 보도자료에서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검사들을 수사 지휘 보직에서 연구 보직으로 전보했다”고 밝혔다. 검사가 사건 처리 도중 부정을 저지른 정황이 있다면 징계위원회에 넘겨 잘잘못을 따지는 게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수사 지휘 대신 ‘연구’를 맡긴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런 ‘나쁜’ 검사들이라면 국민 혈세로 봉급을 받아 무슨 연구를 해서 어떤 결과를 내놓든 사회에 해악만 끼칠 게 뻔하지 않은가.
법무부가 “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검찰 고위 간부들을 한직(閑職)으로 보내는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고 실토했다면 ‘솔직하다’라는 칭찬이라도 들었을 것이다. 극심한 모욕감을 느낀 당사자 4명은 인선 발표 당일 사표를 내고 검찰 조직을 떠났다. 이때부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란 직책이 본래 임무에서 벗어나 정권 교체 후 검찰 고위 간부 ‘물갈이’를 위한 도구로 악용되기 시작했다고 여기는 이가 많다. 문재인정부 뒤를 이은 윤석열정부는 물론 지금의 이재명정부도 비슷한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전 정권 때 시쳇말로 ‘잘나가다가’ 대통령이 바뀌면서 끈이 떨어진 검사들의 ‘무덤’이 법무연수원이란 자조가 나돌 지경이다.
지난 11일 단행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한 검사장들 가운데 4명이 좌천되거나 강등을 당했다. 대도시인 부산·대구·광주 3곳의 검사장들은 역시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보내졌고, 진작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유배된 검사장 1명은 아예 고검 검사로 내려앉았다. 이 같은 인사 배경에 대해 법무부는 “검찰 조직의 기강 확립 및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말 그대로 ‘군기 잡기’인 셈이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이 난 검사장 3명 가운데 2명은 정성호 법무장관 앞으로 사표를 내던졌다. 고검 검사로 가게 된 검사장은 인사명령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에 나섰다고 하니 향후 법원의 판단에 눈길이 쏠린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순 없다. 다만 법무연수원이 법무부·검찰 조직에 새로 채용된 검사, 검찰수사관, 교도관, 보호관찰관 그리고 출입국관리관 등을 위한 직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에 비춰 연구위원들도 그와 긴밀히 관련된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유추해볼 뿐이다. 실제 법무연수원의 원훈(院訓)은 ‘정의·인권 신뢰받는 법무인재 양성’이다. 그런데 장차 대한민국 법무·검찰 행정을 책임질 동량들을 길러내는 기관이 무슨 검사들의 ‘유배지’처럼 활용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법무연수원에서 연수를 받는 연수생들 보기에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 아닌가. 연구위원 보직을 없애든지, 아니면 법무연수원을 검사들을 위한 연수 기관과 법무부 기타 직군을 위한 연수 기관 둘로 쪼개든지 하는 게 옳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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