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용어로서 제청(提請)이란 ‘어떤 안건을 제시하며 결정할 것을 청구한다’는 뜻이다. 우리 헌법은 행정부 구성과 관련해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87조 1항), 또 ‘행정 각부 장관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94조)는 조항을 두고 있다. 물론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에서 총리 혼자 장관 후보자를 결정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과 협의해 장관 후보자를 내정한 뒤 이를 총리에게 알려주면, 총리가 해당 명단을 그대로 갖고 청와대에 들어가 ‘이 사람을 장관에 임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며 천거한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총리의 장관 후보자 제청은 그냥 ‘요식행위’에 불과한 듯하다.
행정부에서 제청권을 행사하는 이가 총리뿐인 것은 아니다. 감사원 구성과 관련해 헌법에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98조 3항)는 조항이 있다. 감사원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감사원장(부총리급)과 6인의 감사위원(차관급) 등 총 7인이 참여하는 감사위원회의다. 감사원장이 직급이 제일 높다고 해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기관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 정책, 주요 감사 계획과 감사 결과에 대한 최종 결론은 감사위원회의에서 재적 위원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비로소 내려질 수 있다. 제아무리 정권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이가 감사원장에 부임해도 감사위원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면 조직 장악은 어려울 것이다.
사실 감사원장의 감사위원 제청권도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마찬가지로 허울뿐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청와대가 새 감사위원을 내정한 다음 감사원장에게 제청을 요구하면 그것으로 끝이란 뜻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 시절 감사위원 임명을 놓고 대통령과 감사원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례적 사태가 벌어졌다. 2020년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훗날 검찰총장 역임)을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려는 청와대가 감사원에 제청을 요구하자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훗날 국회의원 역임)이 두 차례나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렇다고 감사원장의 제청 절차를 ‘패싱’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김 전 차관은 감사원에 입성하지 못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가까운 임선숙 변호사의 감사위원 임명 때문에 설왕설래가 일고 있다. 김호철 감사원장이 지난 2일 임 변호사의 감사위원 임명을 청와대에 제청하자 이 대통령은 곧장 재가(裁可)했다. 이튿날인 3일 임 변호사는 감사원으로 출근해 감사위원 4년 임기를 개시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4일자 일부 조간신문에 이 대통령을 향해 ‘임 내정자 임명을 재가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사설이 뒤늦게 게재됐다. 참여연대는 5일 논평에서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위원 자리에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임명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으나 이 또한 뒷북이 돼 버렸다. 애초 청와대와 감사원이 이걸 노린 것은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한국인 두 번째 IOC 집행위원](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05/128/20260205519811.jpg
)
![[기자가만난세상]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는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09/08/128/20250908517202.jpg
)
![[삶과문화] 수줍은 얼굴의 세상](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05/128/20260205519582.jpg
)
![[박일호의미술여행] 황금분할 비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05/128/20260205519605.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