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하늘의 딸’, 인류 문명의 구조적 결핍을 묻다
창조주 하나님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하늘부모님’이시며, 2천 년간 기독교가 고백해온 ‘성령’이야말로 그 모성적 위격의 영적 실체임을 다시한번 밝힌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인류사에서 가장 뼈아픈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하늘부모님의 형상을 온전히 실체로 닮아 태어난 최초의 여성, ‘해와(Eve, 1952년 개역한글판)’는 왜 역사 속에서 그 위상과 가치를 상실한 채 인류 타락의 원인 제공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에제르 케네그도’, 부차적 존재인가 대등한 조력자인가
인류 구원 섭리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의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세월 유교와 기독교를 비롯한 가부장적 종교 전통은 아담의 갈빗대로 해와가 창조되었다는 성서적 서사를 근거로, 여성을 남성의 부차적 존재이자 종속적인 보조자로 낙인찍어 왔다. 특히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돕는 배필’이라는 번역어는 여성을 남성의 부족함을 메우는 ‘비서’ 정도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전의 의미를 인문학적·신학적 통찰로 다시 읽어보면 놀라운 진실이 드러난다. 성서에서 ‘돕는 배필’은 히브리어로 ‘에제르 케네그도(Ezer Kenegdo, עֵזֶר כְּנֶגְדּוֹ)’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에제르(Ezer, עֵזֶר)’라는 단어는 성경 전반에서 주로 하나님이 인간을 도우실 때 사용되는 강력하고 주체적인 조력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케네그도(Kenegdo, כְּנֶגְדּוֹ)’는 ‘그와 마주하여’, ‘그와 대등하게’라는 뜻이다.
즉, 해와는 아담의 하급자가 아니라, 아담과 서로 마주 보며 하늘부모님의 온전한 형상인 ‘이성성상(二性性相)’을 지상에 완성해야 했던 신의 결정적 파트너였다. 그녀는 창조주의 모성적 성품을 실제 모습으로 대리할 유일한 ‘하늘의 딸’이자, 인류의 참어머님으로 예비된 독생녀의 원형이었던 것이다.
◆‘해와(Haewa)’라는 이름에 담긴 독생녀의 이상
필자는 저서 『세계경전에 나타난 독생녀』를 통해 통일신학의 고유한 용어인 ‘해와(Haewa)’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번역상의 선택이 아니라, 타락하여 원죄의 통로가 된 ‘하와(Eve)’와 구별하여 하늘부모님이 본래 창조하고자 했던 ‘순수한 원리적 여성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신학적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히브리어 ‘하와’의 본래 뜻은 “생명” 또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다. 창조본연의 해와는 아담의 보조자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여성적인 본질(음성성상)을 상속받아 땅 위에서 사랑의 핵(核)을 이루어야 할 주체였다. 만약 그녀가 완성되었다면, 온 우주 만물은 참어머니의 섬세한 사랑을 통해 하늘부모님의 품을 느끼며 영원한 안식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타락은 이 거대한 모성적 이상의 붕괴를 가져왔다. 타락의 본질은 단순히 금단의 열매를 먹은 행위가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에서 사탄과 잘못된 사랑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늘의 혈통을 잃어버리고 ‘거짓 어머니’의 자리로 전락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하늘부모님은 당신의 여성적 본성을 실체화할 통로를 잃으셨고, 인류 역사는 ‘어머니’를 상실한 채 ‘절반의 문명’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모성(母性)의 실종과 부성(父性) 문명의 한계
어머니 없는 가정이 온전할 수 없듯, 모성적 신성을 잃어버린 인류 문명은 약육강식과 정복, 그리고 투쟁의 역사로 치달았다. ‘부성 문명’의 한계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정의와 심판, 법과 질서만을 강조하는 남성 중심의 리더십은 인류 사회를 발전시켰지만,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고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품어 안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섭리의 관점에서 볼 때 구원 역사는 곧 ‘잃어버린 해와의 자리’를 되찾는 과정이다. 아담의 실패를 복구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듯이, 해와의 실패를 복귀하고 본래의 위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하늘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여성을 준비해 오셨다. 타락한 여인을 하늘부모님의 무원죄(無原罪)한 딸인 ‘독생녀’로 복구하는 작업은 구원 섭리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독생녀, 해와의 눈물을 닦는 구원의 마침표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후아담’으로 오셨으나 ‘후해와’를 맞이하지 못한 채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비극은 독생녀를 통한 여성 신성의 회복이 얼마나 어렵고도 중차대한 일이었는지를 방증한다. 인류 구원은 아담의 회복만으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생명의 씨(아버지)와 생명의 태(어머니)가 만날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듯, 구원 역사 또한 독생자와 독생녀가 실체로 만나 참부모의 위상을 확립할 때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창세기의 비극을 넘어 독생녀의 현현을 직시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폄하되고 왜곡되었던 여성의 가치가 독생녀 참어머님이라는 실체를 통해 복구될 때, 에덴의 해묵은 상처는 치유되고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 즉 하늘부모님을 모신 ‘인류 한 가족’의 대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해와의 눈물을 닦고 인류를 중생(重生)의 길로 인도하는 모성적 구원의 비전이야말로, 이 시대가 경전의 행간에서 반드시 찾아내야 할 마지막 복음인 것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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