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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가 불러낸 ‘국민배우’ 너머 안성기…“참 든든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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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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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안성기 특별전’…35㎜ 필름으로 ‘남자는 괴로워’ 상영
이명세 “현장의 자신감 준 배우…필름 속 안성기 계속 만나고파”
“한국영화 다양성에 큰 기여” “큰 나무 같은 존재” 회고 잇따라

전주에서 다시 돌아간 35㎜ 필름이 스크린 위에 영사되며, 흰 턱시도를 입은 안성기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화면을 가로질렀다. 고인이 주연을 맡은 영화 ‘남자는 괴로워’(1994)의 마지막 장면. 극 중 이미 사망한 ‘안성기 과장’이 환상처럼 되살아나 이승의 인물 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퇴장하는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고도 애틋하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둘째 날인 30일, 전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남자는 괴로워’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김홍준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왼쪽부터), 배우 박상민, 이명세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둘째 날인 30일, 전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남자는 괴로워’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김홍준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왼쪽부터), 배우 박상민, 이명세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2일차였던 지난달 30일 오후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된 이 작품은 이명세 감독 특유의 표현주의적 세트 촬영, 슬랩스틱 코미디와 뮤지컬 색채가 돋보이는 영화다. 아직 디지털화가 이뤄지지 않아 영화제 같은 자리 아니면 극장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으로, 상영은 35㎜ 필름으로 진행됐다. 서른 살을 넘긴 필름에 생긴 스크래치는 이따금 화면 위로 비처럼 스치며 아날로그 필름의 감각을 고스란히 전했다. 필름과 디지털 시대를 관통한 배우 안성기를 다시 현재로 불러내는 듯한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는 대기업 ‘오성전자’ 제품개발부를 배경으로, 만년 과장 ‘안성기 과장’을 비롯한 오피스 일원들의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그린다. 청년 시절 천문학자를 꿈꿨지만, 가정 형편 탓에 취업을 택한 마흔 줄의 휴머니스트.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문맹 취급당하는 시대가 도래했건만 컴퓨터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자신의 공을 큰 소리로 내세우지도 못하는 짠내 나는 인물. 상사 앞에서는 모기 소리를 내고, 부서 회식비를 덤터기 쓰기 일쑤인 선한 성정의 남자가 바로 안 과장이다.

 

안성기를 비롯해 박상민, 김혜수 등 모든 배우가 실명과 같은 캐릭터로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도 눈에 띈다. 당초 영화 제목은 ‘과장 안성기’였지만, 안성기 본인이 “부담스럽다”고 고사해 이명세 감독과 상의 끝에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영화 ‘남자는 괴로워’(이명세, 1994) 속 안성기.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남자는 괴로워’(이명세, 1994) 속 안성기.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명세 감독은 안성기를 “현장의 자신감을 준 배우”로 기억했다. 이 감독은 “1980~90년대 20여 년 간 정상의 자리를 지킨 배우였지만, 함께 작업할 때는 그런 위상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만큼 편했다”며 “당대 최고의 배우와 그렇게 스스럼없이 일한 경험이 이후 다른 배우들과의 작업에서도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이명세에게 이 작품은 네 번째 장편이다. 데뷔작 ‘개그맨’부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까지 그가 연출한 장편영화 여덟 편 중 절반을 안성기와 함께했다. 배창호 감독 밑에서의 조감독 시기까지 포함하면 협업의 시간은 훨씬 유구하다. 이 감독은 “필름을 통해 선배님을 만난다는 것이 낯설기보다 반가웠다”며 “앞으로도 선배님을 이렇게나마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박상민에게도 안성기는 각별한 존재였다. 데뷔작 ‘장군의 아들’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으로 안성기를 만난 뒤 5년 만에 함께 영화를 찍게 된 것. 박상민은 이 경험이 “긴장되면서도 영광이었다”며 “항상 촬영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연습을 거듭하시던 모습, 때로는 식사도 거른 채 장면을 준비하던 모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둘째 날인 30일, 전북 전주 CGV전주고사점에서 열린 ‘필름시대사랑' 관객과의 대화 참석한 배우 한예리(왼쪽), 박해일.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둘째 날인 30일, 전북 전주 CGV전주고사점에서 열린 ‘필름시대사랑' 관객과의 대화 참석한 배우 한예리(왼쪽), 박해일.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이명세 감독은 “필름을 통해 선배님을 만난다는 것이 낯설기보다 반가웠다”며 “선배님을 이렇게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상영은 올해 전주영화제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 일환으로 열렸다. 전주영화제는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로 안성기를 기리는 특별전을 열고 ‘남자는 괴로워’를 비롯해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잠자는 남자’(1996), ‘이방인’(1998) ‘페어러브’(2009), ‘부러진 화살’(2011), ‘필름시대사랑’(2015)까지 7편을 상영한다.

 

영화 ‘필름시대사랑’(장률, 2015) 속 안성기(오른쪽)과 한예리.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필름시대사랑’(장률, 2015) 속 안성기(오른쪽)과 한예리.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이날 GV 모더레이터로 참여한 김홍준 전 한국영상자료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명예교수)은 “안성기 배우는 대단히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특히 전주영화제가 지향하는 독립영화와 다양성의 가치에 크게 기여했다”며 “그럼에도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에 가려 그러한 면모는 덜 조명됐다. 대안적 성격의 영화들에서의 안성기 배우를 다시 돌아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앞서 상영된 장률 감독의 ‘필름시대사랑’의 GV에서도 후배 배우들의 회고가 나왔다. 배우 박해일은 “조용히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존재였다”고 했다. 한예리는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고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시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살피던 큰 나무 같은 분이었고, 저희는 그 그늘에서 잘 쉬었습니다.”(한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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