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2월 소련(현 러시아) 얄타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모였다. 세상 사람들은 나치 독일과 싸우는 이들 연합국 정상을 흔히 ‘3거두(巨頭)’라고 불렀다.
훗날 펴낸 2차대전 회고록에서 처칠은 “얄타 회의 내내 가장 비중있게 논의된 문제는 폴란드의 미래”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영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것은 폴란드 주권 수호를 위해서인 만큼 영국으로선 반드시 대의(大義)를 지켜야 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스탈린이란 강력한 견제자 때문에 처칠은 그의 뜻을 관철할 수 없었다.
1939년 나치 독일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 총통은 폴란드에 영토 일부의 할양을 요구했다. 히틀러 집권 후 영국은 이른바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을 펼치며 독일의 영토적 야욕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독일의 체코 병합을 사실상 승인한 뮌헨 회담(1938년 9월 29∼30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폴란드마저 독일에 선선히 넘길 수는 없었다.
영국은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나라인 폴란드의 안전 보장을 약속했다. ‘영국인들이 설마 바르샤바를 위해 피를 흘리겠느냐’고 여긴 히틀러는 1939년 9월1일 독일군에 폴란드 침공을 명령했다. 영국이 폴란드 편에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며 2차대전이 발발했다.
폴란드는 2차대전 기간 나치 독일의 가혹한 점령 통치를 받았다. 그런데 전쟁이 종말을 향해 치달으며 독일을 대신해 소련이 폴란드의 새 지배자로 부상했다. 스탈린은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폴란드 임시 정부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자들을 주축으로 한 새 임시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 후 폴란드가 사실상 소련 영향권에 편입되며 런던 정부는 무력해졌다. 폴란드를 구하려고 전쟁에 뛰어든 영국으로선 자괴감을 느낄 법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폴란드는 암흑기를 보내야만 했다.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가 이뤄진 1991년에야 폴란드인들은 비로소 자유를 누리게 됐다.
27일 런던을 방문한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만나 두 나라 간 국방·안보 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유럽을 겨냥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양국이 무기 개발·양산 등에서 힘을 모으는 것이 핵심이다. 영국 총리실은 폴란드가 “영국의 가장 가까운 방위 및 안보 파트너”라고 거듭 강조했다. 2차대전 발발 직전 영국이 폴란드의 안전 보장을 약속했던 점을 떠올리게 한다. 안보 협력의 대상이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로 바뀌었을 뿐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2차대전 발발 직전의 위태로운 국제 정세로 회귀하는 듯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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