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한 북·중·러와 신뢰관계 두텁고
‘제3 이웃’ 정책으로 외교 보폭 넓혀
한국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발전
북 입장에서도 외교적 활용가치 높아
중·러와 협력, 경제제재 해소 역부족
국제사회로 이끌 제3국의 역할 중요
지난 9∼11일 몽골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몽골을 “매우 특별한 나라”라고 평가했다. 한국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이고 북한과는 “오랜 전통적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또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역내 주요국들과 균형 있는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특유의 ‘외교적 자산’으로 평가했다. 이 대통령이 주목한 몽골의 외교적 가치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몽골이 남북한 간 대화, 교류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좋다. 북한 입장에서도 몽골의 활용가치는 주목할 만하다. 오래된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데다 서방과의 소통창구는 물론 경제협력을 이끄는 중재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을 만난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은 한국을 “‘제3의 이웃’이자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며 호응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방안에 대한 지지도 표명했다. 기대처럼 몽골이 향후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남북 아우르는 ‘제3의 이웃’ 외교
후렐수흐 대통령이 언급한 ‘제3의 이웃’ 정책은 몽골 외교의 핵심 기조다. 국경을 맞댄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과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는 외교전략이다. 중·러, 북한과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이어가면서 제3의 이웃 정책에 따라 서방권 국가와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북한을 동시에 아우르는 외교활동을 펼쳐왔다.
28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주북 몽골대사 접촉보고’에 따르면, 1993년 7월31일 김교식 당시 주몽골 한국대사는 휴가차 울란바타르에 머물던 샤라빈 궁가도르지 주북 몽골대사를 만나 북한 사정을 전해 들었다. 이 자리에서 궁가도르지 대사는 판문점에서 주한 몽골대사와 만나 현안을 협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북한 당국의 엄격한 이동 제한 때문에 판문점 방문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같은 해 작성된 또 다른 외교문서에서는 안보 분야 협력 체계 구축에 적극적인 한·몽골 양국 정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몽골 국가안보회의(NSC)가 우리 정부 NSC와 협력 채널 구축을 추진한 정황이 담겼다.
당시 몽골 NSC 사무총장은 우리 정부 NSC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자료를 요청하는 한편, “긴밀한 연락 및 협력 유지”를 위해 담당자의 직함과 성명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우리 외무부는 관련 자료를 취합해 몽골 측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30여 년간 축적된 외교적 신뢰는 향후 남북 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몽골이 중재국 역할을 수행할 기반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태형 숭실대 교수는 “몽골은 북한의 두 번째 수교국으로 현재까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향후 남북 또는 북·미 직접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정부가 몽골을 매개로 북한과의 대화 재개 여건을 조성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역사적으로도 북한 관련 협의가 필요할 때마다 몽골은 대화의 장을 제공하거나 중재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중·러 경제제재 해소엔 한계
북한 입장에서 몽골은 국제사회와 연결고리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든든한 뒷배인 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옥죄고 있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관련해 가지는 한계 때문에 더욱 주목되는 지점이다.
러시아의 입장부터 살펴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24년 6월 방북을 앞두고 북한 노동신문 기고에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결제체계를 발전시키겠다”고 밝히며 루블화 중심의 결제체계 구축 구상을 제시했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가 루블화를 기반으로 국제 금융제재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경제공동위원회에서 루블화를 양국 교역의 주요 결제통화로 사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양국 간 루블화 결제체계를 본격 가동하거나,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은행간통신망(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된 뒤 확대해 온 독자 지급결제시스템인 SPFS와 미르(MIR) 결제망에 북한을 참여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러시아를 겨냥한 서방의 제재 방식이 한층 촘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EU는 제재 회피 통로와 우회 거래까지 겨냥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제재 회피 경유지로 활용되는 제3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우회 수출 차단에 나서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키르기스스탄이다. EU는 키르기스스탄을 통한 대러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디지털 제어 공작기계와 무선통신 장비 수출을 금지했다. 또 가상자산을 활용한 제재 회피도 단속하고 있으며, 루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A7A5를 대규모 거래한 현지 거래소 운영기관도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중국 역시 한계가 적지 않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면서 중국도 제재 대상국과의 거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 2015년 중국국제금융거래결제시스템(CIPS)을 출범시켰지만 SWIFT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SWIFT가 국제 금융 메시지망이라면 CIPS는 위안화 결제·청산 시스템으로 기능이 다르다. 미 싱크탱크 CSIS에 따르면 현재 CIPS 거래의 약 80%는 여전히 SWIFT 메시지망을 이용한다. 해외 금융기관 상당수가 CIPS 전용 메시지 체계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은행들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위험을 의식하는 만큼 위안화 역시 국제제재를 근본적으로 우회할 안정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더라도 중국 금융기관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국 은행들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과 달러 금융망 접근 제한 가능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위안화 역시 국제제재를 근본적으로 우회할 안정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러시아가 갖고 있는 이런 한계 때문에 북한에 몽골은 실용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몽골이 제3의 이웃이라는 외교 전략에 따라 중국, 러시아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해 국제사회와의 신뢰를 축적한 기반을 갖고 있는 이것이 북한과 국제사회의 교류 확대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여지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북한과 국제사회 연결고리 기대
남북한 모두와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국제사회와의 신뢰도 확보하고 있는 몽골은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중재자의 역할을 기대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북한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가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발을 적극 추진 중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활성화하려면 외자 유치, 국제 금융결제 등이 필요하고, 이는 국제제재와 맞물려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국제 금융망에서 고립된 러시아의 루블화만으로는 관광특구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투자, 소비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렵다. 중국 역시 대북 금융거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와 북한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제3국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몽골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게 이 대목이다.
이 같은 제3국 중재의 선례로 카타르가 꼽힌다. 한국이 2023년 9월 이란의 동결자금 약 70억달러 중 약 65억달러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카타르는 한국, 미국, 이란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금 이전을 중재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는 제3국이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제한적인 금융거래를 가능하게 한 대표적인 사례다.
김태형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경제정책의 성패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이어줄 제3국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청계천 ‘빌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28/128/20260728519106.jpg
)
![[데스크의 눈] 한국과 미국의 부정선거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03/128/20260203519003.jpg
)
![[안보윤의어느날] 멈춤의 이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14/128/20260714524090.jpg
)
![[오늘의시선] 보유세 어떻게 손봐야 하나](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28/128/20260728518828.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