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러시아 남녀 12명이 자전거를 타고 평양 시내를 달렸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국 종주단의 ‘서울∼평양 통일대장정’ 계획이 어려워지자, 가정연합 러시아 회원들이 세계 참가자들을 대표해 평양 구간의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에 나선 것이다.
드미트리 삼코 가정연합 모스크바 회장 등 참가자들은 ‘Peace Road’가 새겨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평양 외곽과 태권도전당, 주체사상탑 등 주요 구간을 달렸다. 자전거를 타던 평양 시민들이 종주단에 합류했고, 지나던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며 호응했다. 남과 북을 잇는 길은 여전히 군사분계선에서 끊겨 있었지만, 외국인들이 북한 땅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페달을 밟는 장면은 뭉클했다.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겠다는 피스로드의 비전 그 자체였다.
평양 시민들도 종주단 합류… 경적 울리며 호응
한국에서 진행되는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의 중요한 목적지는 임진각과 비무장지대다. 제주와 부산, 거제 등에서 출발한 종주단은 지역별 평화행사를 거쳐 서울과 파주를 지나 임진각에 도착한다. 실제 종주 여정은 그곳에서 멈추지만 피스로드가 지향하는 길은 군사분계선 너머 평양과 신의주, 중국과 러시아를 지나 유럽으로 계속 이어진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돼 있지만 남과 북을 잇는 도로와 철도는 분단으로 막혀 있다. 북한을 통과하는 길이 열려 중국의 대륙철도와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철도 등에 연결된다면, 한국에서 출발한 사람과 물자가 육로를 통해 유럽까지 오갈 수 있다. 한반도는 대륙에서 단절된 공간을 넘어 동북아시아와 유럽,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통과 교류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
언젠가 한반도의 청년들이 부산을 출발해 서울과 평양, 신의주를 거치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시베리아를 함께 달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분단으로 끊어진 길을 평화와 교류의 통로로 열고, 한반도를 다시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하려는 소망이 피스로드에 담겨 있다.
그러나 도로와 철도가 이어진다고 평화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길은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교류와 번영의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침략과 약탈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평화고속도로가 진정한 평화의 길이 되려면 국경 너머의 상대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바라보는 가치관과 신뢰, 상호존중과 공동번영의 정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학자 총재가 피스로드를 통해 ‘인류 한 가족’의 비전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 한 가족은 민족과 국가의 차이를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각자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존엄성을 지닌 인류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국경은 국가의 주권을 구분하는 선이지만, 인간의 사랑과 연대까지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길은 경계가 아니라 서로를 만나게 하는 통로
피스로드에서 자전거 타기와 걷기는 이러한 비전을 실천하는 상징적 방식이다. 자동차보다 느리지만 그만큼 지역의 사람과 풍경을 가까이 만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오르막을 오르고, 동료가 뒤처지면 속도를 늦춰 기다린다. 중요한 것은 혼자 먼저 도착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목적지에 이르는 데 있다. 경쟁과 속도보다 협력과 동행을 중시하는 평화의 정신이 자전거의 페달과 참가자들의 발걸음에 담겨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영토분쟁, 민족과 종교의 갈등으로 국경이 굳게 닫히고 있다. 국가들은 장벽을 세우고, 군비를 확장하며,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앞세운다. 그러나 단절은 상대에 대한 오해를 키우고, 오해는 다시 적대와 충돌을 낳는다. 새로운 냉전의 시대에 피스로드는 길이 사람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서로를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러시아 참가자들이 평양 시내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페달을 밟았던 것처럼, 평화는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하나의 소망을 공유할 때 시작된다. 임진각에 멈춰 선 피스로드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가는 날, 한반도의 막힌 길은 세계를 잇는 평화의 길로 다시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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