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60년대 초부터 약 30년 동안 군사 정권을 겪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박정희(2기), 전두환(11기), 노태우(11기) 대통령이 차례로 집권했다. 1980년대 일본의 모 잡지가 세계 각국의 명문대를 소개하며 한국의 경우 육사,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순으로 나열했다고 한다. 주요국 대사를 지낸 어느 외교가 원로는 훗날 회고록에서 이를 거론하며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이 ‘육사가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냐’고 묻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노태우정부 시절인 1989년 3월 육사에서 45기 생도 졸업식 겸 신임 소위 임관식이 열렸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노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물론이다. 까마득한 후배들의 늠름한 모습에 흐뭇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육사 교장이던 민병돈(91·육사 15기) 중장이 연설 도중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들을 포용하려는 노태우정부의 이른바 ‘북방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민 장군은 국가원수이자 육사 선배인 노 대통령에게 경례를 생략하는 결례까지 범했다. 그 직후 교장을 그만둔 민 장군은 얼마 뒤 군복까지 벗어야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노 대통령에겐 최악의 모교 방문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1993년 김영삼(YS)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며 ‘육사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 서울대 철학과(47학번) 출신인 YS는 취임 이듬해인 1994년 2월 모교 졸업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당시 YS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대통령으로서, 또 여러분의 선배로서 벅찬 감회를 누를 수 없다”고 외쳤으나 정작 졸업생과 재학생들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등 대학가는 이른바 ‘운동권’으로 불리던 반(反)정부 세력의 기세가 여전했다. 총학생회 간부들이 쌀 시장 개방 등 YS의 정책에 항의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식장에 진입하려다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장면은 참으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YS 이후 이명박(고려대), 박근혜(서강대), 문재인(경희대), 윤석열(서울대) 등 여러 대통령이 배출됐으나 임기 중 자신이 졸업한 대학을 찾은 사례는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이 모교인 중앙대 개교 11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중앙대 법학과(82학번) 출신인 이 대통령은 이날 특별공로상을 받은 뒤 총학생회장한테 선물로 받은 이른바 ‘과잠’을 입고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후배들과 만났다. 국내 대학가에서 과잠이 보편화한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란 점을 감안하면 현직 대통령이 과잠을 착용한 첫 사례가 아닐까 싶다. 과잠 차림의 대통령 모습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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