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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자·들러리 정해 3조5000억 공사 나눠먹기

입력 : 2014-07-27 20:20:19 수정 : 2014-07-27 22: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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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호남고속철 초대형 담합비리 제재 건설업계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된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 사건에는 국내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연루됐다. 이들에게 ‘경쟁을 통한 적정가격 낙찰’이라는 입찰 제도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오직 눈속임으로 공사를 따냈다. 그런데도 법정관리 또는 워크아웃 중이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6개 업체는 과징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건설사들은 과도한 과징금이라며 울상이지만,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담합 관행을 근절할 것을 촉구했다.

◆예정된 낙찰자와 들러리

2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등 건설업계 ‘빅7’ 임원들은 2009년 여름 국책사업인 호남고속철도 19개 공사구역 중 13개 구역을 나눠먹기 식으로 낙찰받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공사구역별로 누가 낙찰받을지를 미리 정하고 낙찰 예정자를 제외한 참가자들은 들러리를 서줬다.

GS건설, 현대산업개발, 쌍용건설의 임원들은 2009년 11월4∼5일 비밀회동을 가졌다. 호남고속철도 한 공사구역의 입찰 마감일(11월6일)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이들은 저가 투찰을 막기 위해 투찰률과 투찰가격에 대한 각사의 기밀을 공유했다. 대형 건설사 28곳이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에서 이런 방식으로 입찰 담합한 금액은 3조598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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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기업사정 봐주기

고려개발과 극동건설, 남광토건, 삼부토건, 쌍용건설, 풍림산업 등 6개사에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0원’이다. 이른바 ‘사정이 어려운’ 건설사들이다. 극동·남광·쌍용은 법정관리 중이고 고려·금호·경남은 워크아웃 중이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것이 과징금 경감 이유다. 공정위의 ‘과징금 고시’에는 과징금을 가중하거나, 감경 또는 면제해 주는 경우가 명시돼 있다. 법정 회생이나 파산 중이면 과징금 면제가 가능하고 자본잠식 상태이거나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의 가중 평균이 적자인 경우에도 대폭 감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을 역으로 이용하면 법정관리 상태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경우 마음껏 담합을 해도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에 적발된 일부 건설사들도 이런 행태를 보였다. 한 건설사는 담합으로 4000억원 가까운 낙찰금을 챙겼지만 과징금은 없다.

◆선처 호소 VS 강력한 처벌

건설업계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4대강 사업으로 ‘과징금 폭탄’을 맞은 건설사들이 올 들어 인천도시철도 2호선, 대구지하철 공사, 경인운하 사업에 이어 네 번째 고강도 제재를 받았기 때문이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건설사들은 “일부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정부에서 지나치게 제재를 가하는 것 같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건설업계는 지난 23일 열린 ‘건설공사 입찰 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에 대형 건설사 대표들이 참석해 불공정 관행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선처를 호소했는데도 ‘과징금 폭탄’이 내려졌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단체들은 건설사들이 담합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지 않으면 불공정행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팀장은 “기업들 입장에서는 담합해서 공정위에 적발돼 과징금을 내더라도 남는 장사”라며 “과징금을 상향조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기천 기자, 세종=박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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