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가며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드는 대전 보문산 자락에 표태선 악기장(63)의 작업장인 ‘명인국악기제작소’가 있다.
지붕엔 오동나무 판자 수백개가 햇빛을 받으며 마르고 있고, 작업장 안에도 건조 중인 오동나무, 밤나무 판자가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좋은 소리를 내는 가야금 제작은 주재료인 오동나무를 선별해 제대로 건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울림통 역할을 하는 윗판은 25년 이상 된 오동나무를 사용하고 악기를 잡아 주는 기능을 하는 밑판은 단단한 밤나무를 사용하죠.”
간택받은 오동나무 판자는 3년 이상 햇빛과 눈, 비, 바람을 자연적으로 맞게 하여 건조한다.
18세에 상경해 조대석, 김종기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며 국악기 제작을 시작해 45년째 외길을 걷고 있고 얼마 전엔 대전 최초로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현악기)에 선정되는 영광도 있었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모든 국악 현악기를 만드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가야금 제작 실력과 정통성을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이 됐다.
“어린 나이에 시작해 고생도 많이 했는데 꾸준하게 열심히 일한 보상을 받은 거 같아 감격스럽습니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고생해 준 아내와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큽니다.”
소리 좋은 가야금이 완성되기까지는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공정을 두루 거쳐야 한다. 악기는 나무 성질에 따라 대패질도 달리한다. 위판으로 쓰는 오동나무와 밑판으로 사용되는 밤나무 판자를 선택해 대패질하고 다듬어 위판을 만들고 판자를 가열하는 인두질을 한다. 인두질은 전통적 제작 과정 중 하나로, 목재의 색감과 나뭇결을 살리고 방충·방습뿐 아니라 악기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중요하다.
밑판에 사용하는 밤나무에 구멍을 뚫어 소리가 잘 울리도록 만들고, 위판과 밑판 사이에 졸대를 댄 뒤 아교풀로 접착한다. 이처럼 가야금의 몸판을 만들고 그 위에 줄을 떠받치는 안족(雁足)을 만들어 붙인다. 가야금 말단인 봉미(鳳尾)에 구멍을 뚫은 뒤 열두 줄의 굵은 실인 부들을 위에 얹어 고정해 안족 위로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을 걸고 최종 단계인 조율에 들어간다. 직접 연주하며 줄의 장력을 시험하고 음의 높낮이를 맞춰야 가야금이 완성된다.
“제가 만든 가야금으로 공연을 하는 연주자와 전공 학생들이 소리가 좋다고 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 악기를 지키는 일은 어렵고 막중한 일이어서 전통을 지킨다는 긍지를 가지고 힘을 냅니다. 조카인 표영광(43) 이수자가 20년째 성실하게 열심히 배워 나가고 있어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작업장 옆 멋들어진 키위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 밑 평상에서 간단한 점심을 마친 표태선 악기장이 오동나무 판자를 살피러 지붕 위로 올라가고 표영광 이수자는 잠시 멈췄던 대패질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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