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공동체 없이 아이를 낳으라니
저출산 국가책무로 접근한 中도
280조 투입한 한국도 실패한 것
2023년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인구 고령화 대응 브리핑에서 “출산은 민족 진흥과 국가 발전의 중대한 전략 문제”라고 표현했다. 이후 중앙과 지방 정부의 정책 설명과 언론 보도에서 유사한 논조가 반복되고 있다. 출산을 체제 유지 및 국가 전략의 일부로 위치시키려는 담론이 부각되면서 출산 문제는 점차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는 공공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인구 문제를 단순한 사회현상이 아닌 체제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산율 하락은 경제 성장률 둔화, 노동력 축소, 국방력 약화 등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출생아 수는 954만명으로 사망자 수보다 100만명 이상 적었고, 올해 들어서도 이렇다 할 반등 조짐은 없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중국의 총인구는 앞으로 매년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중국은 출산을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국가적 책무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산아제한 정책을 유지하던 2015년 이전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중앙정부는 ‘출산 지원 정책’이라는 이름의 행동계획을 통해 출산율 반등을 위한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지방정부에 구체적인 목표를 부여했다.
출산을 ‘국가화’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국무원은 전국적으로 국공립 보육소 확대와 공동 양육 인프라 구축 계획을 발표했으며, 일부 도시에서는 당조직이 직접 보육기관을 운영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후베이·안후이·쓰촨성 등지에서는 시 단위로 공공 보육센터를 확충하고 있으며, 산간 농촌지역에서는 ‘공동 육아 마을’이라는 실험도 추진되고 있다.
동시에 지방정부들은 보다 구체적인 보조금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10월 기준으로 23개 성이 출산과 보육을 장려하는 각종 재정 지원책을 시행 중이다. 안후이성 허페이시는 둘째 자녀에 2000위안(약 38만7000원), 셋째 자녀에 5000위안(96만7000원)의 일회성 현금을 지급하며, 산둥성 지난시는 둘째·셋째 자녀에 대해 매달 600위안(11만6000원)의 정기 보조금을 지급한다. 쓰촨성 판즈화시는 자녀당 월 500위안(9만7000원)을, 닝샤후이족자치구는 최대 월 200위안(3만9000원)을 만 3세까지 지원한다.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에겐 직업훈련비와 생활비가 보조되며,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구입 비용의 일부를 보조하거나 육아휴가 일수를 늘리는 등 제도적 장치도 확충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정책은 구체화되고 있지만 출산율 반등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정책으로 아이를 낳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젊은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출산이 국가 전략이라면 양육비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인다. 정책은 바뀌었지만 정작 삶의 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풍경이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도 같은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서울의 경우 0.58명에 머물렀다. 정부는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280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으며 출산장려책을 시행해 왔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출산지원금, 산후조리비, 육아휴직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지자체는 다자녀 우대 대출이나 아동수당 확대에 나섰고 교육비 경감과 주거안정 정책도 병행하고 있으나 청년층은 여전히 “애 낳는 건 사치”라고 인식한다.
중국은 강한 개입과 설계를, 한국은 선택 지원과 환경 개선을 강조해 왔지만 접근법이 달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들은 출산의 압박보다 삶의 실질적 안정을 원한다. 결혼과 출산, 양육이 사회적 위험이 된 구조에서는 아무리 많은 지원과 캠페인을 펼쳐도 아이를 낳을 이유가 생기지 않는다.
출산을 통해 인구를 늘리고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사회적 위기감의 반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국가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삶을 결정하지 않는다.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있는 사회, 위험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없이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출산율의 추락은 경고가 아니라 결과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