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돌연 도착한 메시지를 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솥밥 너무 맛있어”. 아무 맥락 없이 그런 문장을 던져둔 사람은 나의 오랜 친구 S였다. S는 내가 궁금해할 겨를도 없이 다음, 또 다음 문장을 보내왔다. “내가 했지만 진짜 맛있다” “표고버섯솥밥”.
나는 다시금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1시9분. 그러니까 평소 S의 생활 습관대로라면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잘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지금, 밥을 해서 먹었다는 건가? 그것도 솥밥을? 최근 나온 새로운 테스트인가 싶은 의심이 든 건 그때였다. 나는 예전에 유행했던 ‘내가 오늘 너무 우울해서 빵을 샀어’ 테스트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했던 나의 대답들은 대부분 맹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넌 진짜 공감능력이 없어, 전형적인 T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런 식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때문에 나는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S에게 보냈다. “갑자기?” 테스트는 아니었는지 S가 곧장 답을 보내왔다.

“자기 전에 오늘의 잘한 일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자랑스러워져서”.
나는 조금 웃었고, 신기한 마음으로 S의 문장을 곰곰 뜯어보았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내게는 새로웠다. ‘오늘의 잘한 일’을 돌아본다는 사실 말이다. 자기 전에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알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알람 시간이 정확한지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소리와 진동이 동시에 설정되어 있는지 확인한 뒤 머리맡에 휴대폰을 두는 게 내 일과의 마지막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잠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눈을 감은 채 좌우로 도록도록 눈동자를 움직이면 금세 숙면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는 그것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전형적인 T라는 건가. 나는 좀 시무룩해진 기분으로 S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S는 내게 캡처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누군가 내 소설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글이었는데, 지극한 문장으로 쓰인 리뷰가 다정하고 섬세했다. 이런 걸 발견했어, 라며 S는 덧붙였다. “오늘 너의 솥밥은 저것으로 하자”. 어떻게 알았을까 싶었다. 아주 잠깐 나는 오늘의 잘한 일에 대해 떠올렸고 잘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한심해했다는 걸 말이다. 오늘뿐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텅 비어 있었으니 내일도 쓸모없는 하루를 보내게 될 거라는 저주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니까 S는 저걸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듯했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우울해하는 내게 소중한 독자의 감상을 전해주려고 솥밥 얘기를 꺼낸 걸지도 몰랐다.
나는 S의 그런 점을 늘 좋아했다. 쾌활하고 자존감이 높은 S는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았다. 그것은 종종 배려심으로 작동해 타인의 자존감을 덩달아 높여주곤 했다. 나를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하는 일, 나를 칭찬하듯 타인을 칭찬하는 일,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친구이니 오래오래 옆에 두고 싶을 수밖에. 친구가 전해준 오늘의 솥밥을 앞에 두고 나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윽한 표고버섯향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보윤 소설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