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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5년간 봉인된 ‘사법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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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2 22:58:21 수정 : 2025-07-02 22: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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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형사재판 잇따라 중단
법원 “국정 운영의 계속성 보장”
헌법 84조 둘러싼 논란 ‘종지부’
성공적 국정 수행에 최선 다하길

요즘 프랑스 정치판을 보면 6·3 대선 이전의 한국이 떠오른다. 지난 3월 프랑스 법원은 공금 횡령 혐의를 받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전 대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하고 5년간 피선거권 박탈도 명령했다. 르펜이 유럽의회에서 탄 보조금을 엉뚱한 곳에 썼다는 검찰 공소 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 형량이 상급심에서 확정되면 르펜은 2027년 대선 출마가 금지된다. 그는 2017년과 2022년 두 차례 대선 결선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겨뤄 연거푸 2위를 기록했다. 2022년 대선 때는 득표율이 41%가 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르펜의 지지율은 여전히 30%대 후반으로 나타난다.

1심 판결 후 프랑스 전역에서 극우 진영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AFP통신은 “르펜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들이 RN 지지자 등으로부터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항소심 선고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여름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애초 1심 판결에 불복하며 “반드시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고 다짐한 르펜도 ‘사법 리스크’에 흔들리는 기색이 뚜렷하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측근인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에게 “나 대신 대선에 출마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법 리스크 탓에) 대선 출마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논설위원

그제 수원지법이 경기지사 시절 법인카드를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통령의 1심 재판 중단을 발표했다. 담당 재판부는 “대통령으로서 헌법상 직무인 국정 운영의 계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 말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는 취지의 헌법 84조에 따른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이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하는 형사재판 5건 중 4건이 멈춰 섰다. 마지막 남은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재판도 곧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간 현직 대통령의 재판 출석을 놓고 논란이 분분했는데 법원이 단안을 내려 다행스럽다.

국민의힘 의원과 지지자들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들어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대통령이 되면 있는 죄도 없어지느냐”며 “임기 중 계속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는 의심을 품은 이가 대다수일 것이다. 관세 등 시급한 현안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데 재판 출석 일정 때문에 미뤄야 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아니겠는가. 역시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던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그를 겨냥한 모든 수사와 재판이 중단된 전례도 있다. 대통령직의 막중함을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라고 하겠다.

그러자 야당은 “5년 후 임기가 끝나면 성실하게 재판을 받을 것을 약속하라”는 새 요구를 내놓았다. 이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과연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대표해 세계 여러 나라 정상과 만나 의견을 나누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한국이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고 심지어 “한국도 G7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우리 대통령과 마주한 상대방이 ‘얼마 뒤 법원에서 재판이나 받을 사람’이란 선입관을 갖고 있다면 과연 강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런 약속이 굳이 필요하다면 임기 말에 해도 무방할 것이다.

법치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대통령이라고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오는 2030년 6월 물러나면 그동안 중단된 사법 절차의 재개는 자명하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대통령은 누명을 벗을 수도, 유죄가 확정될 수도 있다. 물론 우리 국민 가운데 ‘불행한 전직 대통령’ 명단에 또 한 명이 추가되길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재판 중단이 “국정 운영의 계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법원의 결정 이유를 깊이 새기길 바란다. 5년간 봉인된 사법 리스크에서 풀려나는 순간까지 성공적인 국정 수행에 최선을 다하길 고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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