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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폭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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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8 22:59:30 수정 : 2025-07-08 22: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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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엔 진짜배기 커피 애호가가 많다. 그들은 커피나 커피 맛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아무 커피나 잘 마시는 나에 비해 그들의 커피 선호도는 꽤 까다롭고 진지하다. 하여 만나는 장소도 커피 맛에 따라 정해질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커피 애호가라기보다는 커피 의존자에 가깝다. 특별히 선호하는 커피도 없으면서 커피가 곁에 없으면 몹시 불안한.

오늘 내가 가는 카페도 커피 맛이 일품이라고 소문난 카페다. 연희동에 있는 ‘이심’ 카페. 그곳에서 담양에서 올라온 송기역 시인을 만나기로 했다. 송 시인 역시 대단한 커피 애호가다. ‘이심’은 송 시인이 연희동에 살 때 단골 카페로 지금도 서울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란다.

나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묘하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반지하인 데다 그리 넓은 편이 아닌데도 밝은 톤의 벽면 때문인지 답답하지 않고 쾌적하고 참 편안하다. 게다가 처음 왔을 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 ‘커피에 대한 변명’이 벽에 짜잔! 걸려 있지 않은가. 아니, 하고많은 커피 시 중에 다르위시의 시를? 나는 너무 좋아서 카페 주인에게 엄지 척을 보냈다.

“나는 나의 커피를 내 어머니의 커피를 그리고 내 친구들의 커피를 알고 있다./ …/ 커피는 그 무엇과도 다르다./ …/ ‘커피의 맛’이라고 라벨을 붙일 수 있는 그런 맛은 없다./ 커피는 하나의 개념도 심지어는 오직 유일무이한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 모든 사람에겐 각자에게 특별한 커피가 있다./ 너무도 특별해서 각각의 맛과/ 영혼의 고상함을 커피의 맛으로 말할 수 있다.”로 시작되는 긴 시다. 커피 맛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이들에게 이 시를 꼭 읽어줘야겠다. 진짜 ‘커피의 맛’이라고 라벨을 붙일 수 있는 그런 맛은 없다고. 모든 사람의 커피는 각자에게 특별하다고.

담양의 좋은 물과 신선한 공기와 햇빛 속에서 살아서인지 송 시인은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느낌이다. 그는 담양에 살면서 광주에서 독립서점 ‘기역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담양 창작촌에 있을 때 주문했던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서울 오는 길에 직접 들고 와주어서 고맙고 반가웠다. 이 책은 노후를 위해 산 책이다. 남은 생 동안 늘 이 책을 곁에 두고, 인디언들을 애도하며 그들처럼 살고 싶어서.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서부터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연희동 골목길을 걸으며 주택가 담장을 살짝 넘어와 우리를 향해 활짝 웃는 능소화와 눈 맞추며 아, 이런 쏠쏠한 재미와 다정함이 아직도 살아 있어 얼마나 다행하고 고마운지! 폭염 속에서도 크게 기지개를 켰다.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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