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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더 센 상법에 ‘피터팬 증후군’ 번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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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6 23:01:45 수정 : 2025-08-26 23: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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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소주주 갈등은 주총서 해결해야
감사위원 분리선출·의결권 제한 전례없어

더 세진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7월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여당의 일방적인 주도하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트럼프발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하여 코너에 몰린 우리 기업들에 여당은 기를 불어넣기는커녕 아예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여당은 이미 국회에 제출된 여러 건의 법안을 바탕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를 9월에 시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상법 개정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지도 않다.

미국 회사법상 집중투표제는 소수자에 대한 대표선출권을 부여한다는 정치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이 1861년에 발간한 ‘대의정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자 보호에 소홀하지 않다. 그러나 소수자의 보호가 다수결의 원칙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어디까지나 다수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로 인하여 대주주라 하더라도 이사회 의석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는 국면이 초래될 수 있다. 이처럼 소수 주주들이 대주주의 의사를 배제하고 회사 운영을 좌우한다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이념에 배치된다. 주식회사에서 대주주와 소수 주주 사이의 갈등은 주주총회에서 해결하여야 한다. 만약 행동주의 펀드가 먹튀를 일삼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활용하여 주주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자를 이사로 선임한다면 사실상 대주주와 소수 주주 간의 다툼이 이사회에서도 재현되어 그야말로 회사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미국은 한때 여러 주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였지만 지금은 소수의 주에서만 강제되고 있을 뿐이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주는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행사를 통하여 자신의 이해와 중대한 관계가 있는 사항에 관여할 수 있다. 주주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권한은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권한이다. 감사위원은 이사로서의 지위를 함께 지니고 있어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미 7월 상법 개정에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가 감사위원 선임을 하는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하여 발행주식 총수의 3%로 제한되었으며 8월 상법 개정에서는 2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분리하여 선출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은 사실상 주주의 이사선임권을 침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분리선임되는 이사의 숫자까지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입법례는 매우 기교적인 것이다 보니 외국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다수는 소수를 보호하고 배려할 뿐이지 소수가 다수 위에 군림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번 상법 개정은 다수자의 지위를 소수자에게 인위적으로 이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집중투표제와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 수의 확대로 인하여 연기금이나 행동주의 펀드가 소수 주주와 연합하여 여러 이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소수 주주에게 다수 주주의 지위를 부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주식회사가 고유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나마 매우 단순하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상장하지 않는 것이다. 비상장 회사의 경우에는 상법상 상장사에 대한 특례규정이 모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대주주가 긴 호흡을 가지고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다. 다만 자금조달이 순조롭지 않아 회사 규모가 정체될 우려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으로는 상장을 하더라도 자산총액 2조원 미만 정도로만 회사를 성장시키면 된다.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인 경우에는 상근감사를 두면 되며, 이 경우 상근감사는 이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다. 이처럼 이번 상법 개정안은 한국의 기업이 성장할 유인을 꺾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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