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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정청래의 ‘집토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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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15 23:53:05 수정 : 2025-10-15 23:57:48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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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끼 결집을 승리 전략 삼은 與
지지층 요구대로 개혁 드라이브
일방 질주하다 신뢰 자본 잃으면
중도 유권자 우군화하기 힘들 것

선거 전략에는 당 정체성을 강화해서 지지층인 집토끼를 결집해야 한다는 ‘집토끼론’과 당 정체성을 완화해서 중도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산토끼론’이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 정당에서 두 전략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최근 시도당 위원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산토끼를 잡으려다 선거에서 투표소에 나와 찍어줄 집토끼를 놓쳐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대표 취임 이후 좌고우면하지 않고 추진해온 검찰·사법개혁 등이 내년 6월 지방선거 승리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는 “개혁에 반드시 수반되는 반발에 발목 잡혀 실패하면 결국 우리가 죽는다”고도 했다.

정 대표의 개혁 드라이브는 민주당 지지층의 요구에 부응한다. 세계일보가 갤럽에 의뢰한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 응답자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73%)와 검찰청 폐지(89%)에 찬성했다. 반면 무당파로 분류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검찰청 폐지와 조 대법원장 사퇴에 반대했다. 민주당은 ‘검찰청 폐지법’을 강행 처리하고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사법부 수장을 공격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비춰 보면 지지층은 환호하겠지만, 중도로 볼 수 있는 무당파 다수는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조남규 논설위원

정 대표의 집토끼론 배경엔 초선 시절의 경험도 일조한 것 같다. 정 대표는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 입법 추진이 무산되면서 지지층이 이탈하고 이는 지방선거 완패와 정권 재창출 실패로 이어졌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정 대표를 비롯한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무산시켰다. 정 대표는 열린우리당 실패의 원인을 개혁 무산에서 찾았지만, 일방적인 개혁 추진이 부른 민심 이반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무현 청와대 출신의 민주당 원로는 “정 대표가 당시 상황을 거꾸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혁 추진 방식과 관련해 정 대표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방송에 나와 ‘개혁은 필요하다. 다만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는 방식으로 진행돼선 안 된다’는 취지로 대통령실의 불편한 기류를 전했다. 우 수석은 ‘속도와 온도의 차이’라고 표현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수술대 위로 살살 꾀어서 마취도 살짝 하고, 잠들었다가 일어났는데 ‘여기 배를 갈랐나 보네. 혹을 뗐네’ 이런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대통령께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런 인식은 지지층의 목소리만 듣는 개혁 방식으로는 중도로 외연을 넓히기 어렵다는 산토끼론과 맞닿아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표출된 우리 국민의 정치 성향을 보면 진보와 보수는 엇비슷하고 중도층이 가장 두껍다. 위에 인용한 갤럽 조사에서는 보수 28%, 진보 30%, 중도 34%였다. 보수와 진보를 상수(常數)로 보면 결국 중도가 선거 승패를 가른다. 정당은 중도를 어떻게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집토끼론에 따르면 중도는 현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부동층이다. 선거 때마다 더 끌리는 정당에 투표하기 때문에 중도에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당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산토끼론은 중도 역시 중도보수든 중도진보든 나름의 정치 성향을 띤다고 본다. 중도를 우리 편으로 만들려면 정책이나 이념에서 보수 정당은 좀 더 왼쪽으로, 진보 정당은 좀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집토끼론과 산토끼론은 둘 다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만, 그 어느 쪽도 복잡한 정치 현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중도를 어떻게 규정하든, 이들은 대체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의 유권자다. 목소리가 크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정당을 선호한다. 그러니 상식과 합리, 신뢰와 같은 무형의 자본이 잠식된 정당은 아무리 정체성을 강화해도 중도의 마음을 살 수 없다. 집토끼만 쫓고 있는 민주당은 중도의 마음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중도의 신뢰 자본을 적지 않게 까먹은 국민의힘에도 같은 조언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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