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불똥이 한국에 튀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그제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등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해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단행했다. 필리조선소는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한 곳으로,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 거점이다. 이탈리아, 호주 등도 미국에서 배를 만드는데 유독 한국만 콕 집어 제재를 가한 건 누가 봐도 한·미 협력에 대한 보복이다. 글로벌 조선 시장을 한·중이 양분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다른 외국 기업들에 미국의 협력에 대한 경고를 보내려는 의도도 깔려 있을 것이다.
중국은 제재와 관련해 미 정부의 조사를 지지·협조해 자국 주권과 안보이익을 해쳤다는 황당한 이유를 댔다. 미 현지 기업이 미 정부에 협조하는 건 중국 진출기업이 현지 정책에 호응하는 것처럼 당연한데도 막무가내다. 당장 이들 기업은 중국과 직접 교류가 없어 피해가 없다지만 안심할 때가 아니다. 중국이 한국을 향해 미국의 대중포위전략 협력을 빌미 삼아 제재 대상과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주력산업까지 제재에 포함될 수 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중관계는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져드니 걱정이 크다. 양국은 14일부터 서로 상대국 선박에 항만수수료 혹은 특별항만세를 물리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100% 추가 관세로 맞불을 놨다. 중국의 미국산 대두(콩) 수입중단에 대해서도 식용유 교역중단으로 응수했다. 이 추세라면 미 동맹국인 한국을 향한 중국의 제2, 제3의 마스가 제재가 현실화되지 말란 법이 없다. 와중에 우리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펀드를 놓고 미국의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 없도록 국가 차원의 총력전이 절실한 때다. 정부는 가용한 대미·대중 통상·외교채널을 모두 가동해 국익을 방어해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에이펙 정상회의에서 “강대국 간의 가교역할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도 저도 아닌 균형론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냉정한 현실 인식하에서 우선순위를 가리고 국익과 실용에 기반한 정교한 전략을 짜야 한다. 한·중관계 관리도 중요하지만 부당한 제재에 대해서는 엄중히 항의하고 철회 및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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