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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사랑·상처… 유구한 폭력의 역사 속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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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21 20:07:16 수정 : 2025-10-21 21:30:58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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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 6년 만의 신작 ‘세계의 주인’ 22일 개봉

트라우마 지닌 여고생 회복·성장기
핑야오영화제 2관왕… 평단 극찬

“청소년 성·사랑 서사 10년간 구상
이금이 소설 읽으며 연출 방향 잡아”

윤가은 감독 6년 만의 신작 ‘세계의 주인’(22일 개봉)은 평범한 여고생의 일상을 그리는 듯이 시작한다. 고교 2학년 ‘주인’(서수빈 분)은 빈 교실에서 남자친구와 서툰 키스를 나누고, 친구들과 웃으며 춤을 춘다. 집에서는 남동생의 마술 공연을 보며 웃고, 과음하는 엄마 ‘태선’(장혜진 분)을 타박하며,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단란해 보이는 일상 뒤로, 주인의 지난 상처가 서서히 밝혀지며 영화는 익숙한 청춘 영화의 풍경에서 다른 결로 나아간다.

지난 15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윤 감독은 손편지를 통해 취재진에게 스포일러 자제를 당부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사전 정보 없이 볼수록 더 큰 울림을 주는 영화다.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가은 감독은 영화 ‘세계의 주인’에 연상호·변영주 감독, 배우 박정민 등이 찬사를 보낸 데 대해 “이 영화나 나에 대한 칭찬이라기보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한 사람들에 대한 지지로 느꼈다”며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주인이들’에게 손 내미는 온기가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영화인으로서 흥행은 ‘세계 평화’ 같이 먼 꿈이지만, 많은 분이 영화를 봐주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주인은 성(性)과 사랑, 감정을 배우고 탐색하는 청소년기 한가운데에 있다.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 감독은 “성과 사랑을 경험하는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를 10년 이상 품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사실적인 경험, 진짜인 순간을 담으려다 보니 사랑과 공존하는 트라우마와 공포를 함께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작품 방향을 고민하던 중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을 다시 꺼내 들었다. 유년기에 성폭력을 당한 두 여중생의 회복과 성장을 다룬 이 소설이 윤 감독에게 등불이 됐다. 윤 감독은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작품을 끌고 나갈 방식에 가이드가 생긴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른만큼 치열한 아이들의 세계를 그린 윤 감독의 전작 ‘우리들’(2016), ‘우리집’(2019)이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 내면의 흐름을 좇았다면, 이번 영화는 주인을 둘러싼 세계에 주목한다. 주인공 주인만큼이나, 세계가 주인에 대해 말하고 판단하는 시선이 중요한 영화다. 윤 감독 스토리텔링 방식의 큰 전환점이다.

윤 감독은 영화의 주제에 대해 고민할수록 1인칭, 개인의 서사로만 이야기를 담는 데는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주인에게 벌어진 일이 개인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주인에게 벌어진 일은 유구한 폭력의 역사, 그 연장선에 놓인 사건”이라며 “이를 바라보는 세계의 인식도 함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인 役 서수빈.

제목 ‘세계의 주인’은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주인이라는 소녀가 자기 삶의 주인(主人)으로 세계 속을 살아가고, 세계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함을 선언한다.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입었고 앞으로도 상처받으며 살아갈 테지만, 자기 인생의 주체성과 통제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큰 고통을 겪은 생존자들, 트라우마를 안고 매일 뚜벅뚜벅 살아가는 세상의 여러 주인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피해자’로만 살지 않으며, 그들의 삶이 단 하나의 비극적 사건으로 요약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영화는 보여준다.

태선 役 장혜진.

이 영화는 지난달 열린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로 초청받았다. 같은 달 중국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는 중국 거장 지아장커 감독의 극찬 속에 2관왕을 차지했다.

윤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주목한 ‘차세대’라는 수식어를 오랫동안 달아 왔다. 2020년 봉 감독이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 함께 선정한 차세대 감독 20인 중 유일한 한국 감독으로 꼽히면서다. 그러나 ‘차세대’라는 표현은 이제 무색해 보인다. 윤가은은 더는 내일의 이름이 아니다. 오늘 한국영화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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