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여행자나 불교 신자라면 꼭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불교의 성지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사원인 앙코르와트는 직접 눈으로 봐야만 엄청난 규모와 자태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관광국으로 알려진 캄보디아가 이제는 온라인 스캠(사기), 보이스피싱,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의 주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평화연구소(USIP)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범죄조직이 연간 사기 범죄로 거둬들이는 수익금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125억달러(약 17조8700억원)로 추정된다.
캄보디아가 각종 범죄의 통로로 악용된 것은 주변국의 상황이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 이후 대대적인 반부패 캠페인을 전개했다.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삼합회 등 범죄조직들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 근거지를 옮긴 배경이다. 필리핀에서도 2016년 취임한 당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상대적으로 감시·제재가 느슨한 캄보디아에 범죄 복합 단지가 형성됐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 솟아오르게 되는 이른바 ‘풍선효과’의 전형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풍선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과천시, 광명시 등 경기 12곳을 규제 지역으로 묶어놨다. 규제 지역에서는 무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이 40%로 제한되는 것은 물론, 고가 주택에 대한 주담대 한도도 줄어든다. 대출 없이 집을 사기 어려워진 주택 수요자들이 인근 지역으로 몰리면서 규제 대상에서 빠진 화성 동탄, 남양주, 구리, 부천, 용인 기흥구 등에선 호가가 수천만원씩 오른 단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풍선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파트값이 오르면 빌라(연립·다세대주택)를 찾는 사람이 늘고, 매매 대신 임대시장에 머무는 수요까지 더해지며 전월세 시장도 들썩이게 된다. 집값 상승과 전세난에 시달리던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일단 사놓고 보자”는 심리가 번지면 패닉바잉(공포매수)으로 결국 부동산 시장 전체가 과열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과 4∼5년 전 부동산 민심이 폭발한 것을 국민 전체가 목도한 바 있다.
풍선효과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정책 결정권자가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눈앞에 보이는 쉬운 길을 찾아가면 여지없이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풍선의 입구 쪽을 풀어서 천천히 바람을 빼는 수밖에 없다. 범죄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캄보디아로 간 상당수는 국내에서 취업이 어려워 고민하던 청년층이고, 부동산 대출 규제로 직격탄을 맞은 계층은 현금 부자가 아닌 서민 실수요자들이었다. 풍선효과로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인 셈이다. 캄보디아 사태와 10·15 대책의 후속 조치를 준비 정인 정부·여당의 신중하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캄보디아에 대한 군사적 조치나 원조 중단 같은 강경 대응은 범죄조직이 제3국으로 무대를 옮기는 새로운 풍선효과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청년층의 근본적인 일자리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인위적으로 수요를 억누르는 조치는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입지 여건에 질 좋은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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