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담보 없는 종전 선언 우려
韓, 국익에 반하지 않게 밀착 마크
트럼프 일탈 막기 위한 노력 필요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공공연히 김 위원장을 만날 의사를 밝혀왔다. 다만 현재로선 김 위원장이 그것을 받을 동기는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워싱턴 조야의 대체적 시각이다.
2018년 ‘평양의 봄’ 당시와 현재는 정세가 너무 달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로 자리 잡았고 중국과도 교역이 재개됐다. 북한의 핵능력은 그때보다 더 고도화됐고, 서울과는 굳게 담을 쌓았다. 북한은 더 이상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요구한 유엔 제재 해제 등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사실 북·미 관계는 2019년 6월 판문점 회담에 머물러 있다. 내용으로 치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2019년 2월과도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그래도 6월을 언급하는 것은 당시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자고 하면 48시간 내에 만날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간은 1, 2기 합쳐 이제 4년9개월쯤이 된다. 그 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실제 대화를 하고 있던 국면은 아무리 길게 봐도 2년이 안 된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5월 납북자 송환,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등을 거치며 북·미 간 대화가 시작됐고 2019년 2월 이미 관계에 금이 갔으며 10월 스톡홀름 실무협상과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완전히 문을 닫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김정은과 친하다”고 하는 것, 북한이 “수뇌들 간의 각별한 친분 관계”를 언급하는 것은 이제 와선 혹시 모를 필요를 위한 ‘립서비스’ 성격이 짙어 보인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꾸만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여지를 두는 것은 세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준 달콤한 스포트라이트의 기억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선거운동 중 그는 꾸준히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언급했는데, 첫 번째 임기에서 ‘평화의 중재자’로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었다. 공공연히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에서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성과나 다름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에 집중하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지면 북한은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다.
그때 벌어질 일들은 한국엔 골치 아픈 일이 적지 않아 보인다. 브루스 클링너 맨스필드재단 선임연구원은 최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대화를 재개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포기를 명시적으로 용인하지는 않겠으나 언급을 피하며 미뤄 두는 방식을 쓰거나, 비핵화를 담보하지 않은 종전선언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치적인 것으로 포장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북한의 핵보유는 이미 현실이라고 언급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비슷한 뉘앙스로 아시아 순방길에서 북한에 대해 재차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는 언급을 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만 된다면 김 위원장을 만나려 할 것이다. 1기만큼의 사전 준비도 없이, 자신이 직접 극적으로 김 위원장을 접촉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들이 결국 재회한다면 한국이 선택할 방법은 하나다. ‘적극 지원’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트럼프 대통령을 ‘밀착마크’해서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합의를 하지 못하도록 그를 구슬리고, 아첨하고, 설득하면서 소외되지 않도록 애쓰는 일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 재임 내내 계속될 대미 투자와 동맹 현대화 등 현안이 중첩한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격려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 한 것엔 이런 점을 염두에 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사실상 대화가 끊긴 것이 6년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에게 맡겨 놓기엔 너무 엄중한 사안이다. 최대한 신중하게, 천천히 가야 한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16년 만에 태풍 없는 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6/128/20251026510507.jpg
)
![[특파원리포트] 트럼프가 결국 김정은을 만난다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6/128/20251026510499.jpg
)
![[구정우칼럼] ‘욕구 봉쇄’는 저항을 부른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6/128/20251026510477.jpg
)
![[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무라야마 담화’의 가치](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26/128/20251026510487.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