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핵보유 암묵적 용인’ 우려
남북 대화 물꼬 트기도 쉽지 않아
韓, 부담 증가… 국방력 강화 절실
미국이 지난 5일 공개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 ‘한반도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n the Korean Peninsula)’란 표현이 사라졌다. 중국이 11월27일 발표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이라는 제목의 국방백서에서도 그동안 중국이 계속 강조해 왔던 ‘한반도 비핵화’란 문구가 빠졌다. 북핵 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두 나라의 안보전략 백서에서 우리의 가장 큰 위협인 북핵 문제가 사라진 것이다.
미국의 이번 안보전략 보고서는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해 온 ‘자국 우선주의’ 및 ‘선택적 개입’을 명시한 ‘비개입주의(Non-Interventionism)’와 ‘신고립주의’의 결정판이다. 특히 지역별 안보 문제의 최우선 순위에 미 대륙을 포함하는 ‘서(西)반구’를 배치하면서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상대적 중요성이 감소한 전구들에서 미군 배치를 재조정할 것임을 강조했다. 동시에 미국이 세계 질서 전체를 짊어지던 시대는 끝났다며 동맹국과 파트너들에게 지역안보 분담을 요구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역할 축소와 동맹 부담 증대가 핵심이다.
중국에서 발표한 군축 백서에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사라지면서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중국은 2005년 군축 백서나 2017년 아시아·태평양 안보 문서에서도 비핵화 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특히 올 5월 안보 백서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과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기에는 북한 핵 고도화가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미·중 양국의 북핵에 대한 전략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라면 동북아의 전략 지형은 중장기적으로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유연한 현실주의’ 원칙에서 통치체계와 사회가 다르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명시했다. 이는 불법 핵 개발 국가인 북한과도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시사로 읽힌다. 중국도 한반도의 평화·안정·번영에 힘써 왔다면서 이번 백서에서 처음으로 ‘정치적 해결’ 과정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코 용인할 수 없다던 북핵 문제나 한반도 비핵화 추진에 정치적 해결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미·중에 있어 북핵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양자 간의 우선 처리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은 북핵이 더는 직접적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고려하여 비핵화보다는 한반도에서 영향력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미국의 한국 원자력 추진 잠수함 승인 등 한·미동맹 강화 추세 및 일본의 국방력 강화는 물론 한·미·일 3각 공조에 대한 중국식 대응이기도 하다.
문제는 미·중 양국이 국제적 원칙이었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북핵을 용인하는 태도로 선회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북핵을 고착화하고 북한의 잠재적인 오판을 부를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의 요구는 한국이 자체 국방력을 강화해 북핵 억지는 물론 중국에 대한 억제 역할을 맡아 달란 뜻이다. 중국은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 추진에 대해 ‘핵 비확산’을 강조하는 경고를 보내면서 한·미·일 3각 공조체제에 균열을 조성하려 한다. 만일 중국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한국은 물론 한·미 차원의 대북 전략 부담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는 북핵 위협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더 많은 위협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국은 미국의 전 세계 군사 주둔 재조정 정책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과 함께 미국의 대중 견제 동참 압박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쉽지 않다. 결국 자강(自强)만이 살길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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