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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리스본행 상상열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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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30 23:11:27 수정 : 2025-12-30 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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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 두 편을 썼다. 아주 짧은 시와 조금 긴 시. 이제 새해가 왔으니 지난해에 정진하지 못했던 시 쓰기에 전력을 쏟고 싶어 밤새워 시 2편을 썼다. 퇴고 과정이 남아 있긴 해도 오랜만에 시 2편을 써놓고 이토록 기뻐하다니, 역시 나는 시인이 맞았구나!

마지막 달력을 벽에서 떼어내고 새 달력을 걸었다. 이제 내 앞에 새로운 365일이 전개될 것이다. 지난해는 폭삭폭삭 주저앉은 인간관계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그 상처가 너무 서럽고 아파 조그만 일에도 정성을 쏟지 못했다. 관심과 애정을 주지 못했다. 이젠 새해가 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새해야말로 지난날을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천혜의 기회이니까.

나는 마음 기운을 더 북돋기 위해 내 장기인 상상열차를 불러내 그 위로 폴짝 뛰어오른다. 리스본행 상상열차. 그래, 오늘은 평소 가보고 싶었던 리스본의 구도심으로 가자. 그곳에 가면 지구 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리브라리아 베르트랑이 있다. 1732년 베르트랑 가문이 만든 서점. 설립된 지 29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호황인 서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서점. 아마 그곳에 가면 293년의 역사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책 귀신들이 모여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만나면 지금의 내 기분도 활짝 펴지리라. 모든 책 귀신들은 내 일상의 천사들이니까.

나는 상상열차에서 내려 서점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곤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조제 사라마구(1998년 포르투갈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 그 책에는 페소아의 이명 중 하나인 히카르두 헤이스가 페소아의 부음 소식을 듣고 비 내리는 리스본 거리를 헤매다 베르트랑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아 몇 번이나 이런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여기서 바다가 끝나고 땅이 시작된다. 무채색 도시에 비가 내린다.”는 이 책의 첫 문장처럼.

그러나 이 둘은 생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다. 1935년, 페소아가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사라마구는 겨우 열세 살이었다. 그럼에도 사라마구는 평소 흠모하고 존경했던 페소아의 이명 중 하나인 ‘히카르두 헤이스’를 부활시켜 선배 작가인 페소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경의를 원 없이 이 책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나는 그 책을 들고 베르트랑 서점 끝에 있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냥 그곳에 오래오래 머물기만 해도 부진했던 내 시심이 그 둘의 문학 기운에 의해 서서히 깨어날 것 같아서. 그러면 내 꿈들, 아직 이루지 못한 가엾은 내 꿈들도 그들과 함께 섞일 것 같아서. 그 둘은 언제 읽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고, 가장 치열하게 닮고 싶은, 최고의 내 문학적 자산들이니까.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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