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세계가 알아듣기 시작한 한국어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6-01-05 23:23:27 수정 : 2026-01-05 23:23:26
이현미 산업부 기자

인쇄 메일 url 공유 - +

“안.녕.하.세.요. 저는 손흥민 좋아해요.”

지난해 말 프랑스 마르세유 출장에서 단체로 이동하던 중에 나이 지긋한 프랑스 남성이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무리 지어 이동하던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한국어로 알은체를 한 것이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는 제법 많았다. 일행 중에 축구를 잘 알고 영어도 유창한 동료가 기껍게 프랑스 남성과 대화를 나눈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대화가 이른바 ‘기초 한국어’에 나올 법한 간단한 말이 아니었는데도 프랑스인이 알아듣고 말을 걸어오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가웠다.

이현미 산업부 기자

그날 일정을 마친 후 저녁 식사를 하러 프랑스식 코스 요릿집에 들렀다가 빈 와인잔을 채워주는 프랑스 청년 웨이터를 보고 그만 “와 저분 잘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다른 언어 문화권에 있을 때의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스며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왠지 모르게 내가 앉은 테이블 쪽 와인잔이 더 빨리, 더 자주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알아들었나?’

독일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소꿉친구에게 당시 에피소드를 전했더니 “100% 알아들었을 거야. 유럽에서 한국 문화에 가장 먼저 반응한 나라가 프랑스야. 특히 젊은 세대였다면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언어 공부까지 했을 가능성이 높아”라고 했다. 아차, 다행히 칭찬이었지만 그래도 경솔했구나 싶었다.

친구는 2000년대 중반 독일 생활 초기만 해도 현지인으로부터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인구 비율상 동북아 외모의 외국인 중 중국인이 가장 많았던 데다 그들 상당수가 아는 코리아는 ‘노스 코리아’(북한)였기 때문이다. 친구는 “지금은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 BTS(방탄소년단)에게 감사하다니까”라고 했다. 그리고 타향살이가 힘들 때면 한국말로 혼자 중얼거리곤 했는데 이제는 누군가 알아들을 수 있어 그런 습관을 고쳤다고 한다.

직접 겪거나 주변에서 전해 들은 일부 사례만으로도 한국의 위상 변화는 격세지감이다. 2000년대 초반, 선원으로 화물선을 타고 전 세계를 누볐던 사촌 언니는 유럽의 한 지방 상점에 ‘만지지 마세요’라고 적힌 한글을 보고 낯이 뜨거워졌다며 개탄한 적이 있었다. 해당 문구를 적었던 당시 유럽인에게 한국은 ‘불청객이 많은 미지의 나라’였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실감케 했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혼잣말을 입밖으로 꺼내도 알아듣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인에 대한 세계인의 호감이 늘었고, 우리 언어와 문화가 외국인과의 소통·대화의 매개가 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환경이 이렇게 달라졌는데도 당사자의 귀에 들릴 거리에서 낯선 외국인의 외모에 대해 언급한 나의 무례가 뒤늦게 인식됐다. 우리 말의 영향력을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이었다. 일본이 전 세계 경제를 주무르던 1960∼1980년대 초호황기에 성장한 일본인은 세대 전체가 시민 의식에 더 민감하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해외에서도 한국어로 하는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우리에게도 경제 성장과 문화 발전에 이어 공동체 전체가 시민 의식을 더 배양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피니언

포토

노정의 '깜찍한 볼콕'
  • 노정의 '깜찍한 볼콕'
  • 한소희 '깜찍한 볼하트'
  • 강혜원 '완벽한 미모'
  • 한사라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