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이 일하는 어느 공공조직에 매년 1억원의 예산이 주어진다. 한 직원이 소모품을 구입하던 중 “정가 200만원인데 첫 거래는 반값, 영수증은 정가로 끊어 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임자 없는 돈’이 태어난다. 동료 99명은 각각 1만원의 손해를 보지만, 조직에 손실을 떠안긴 한 명은 99만원을 챙긴다. 피해는 분산되어 체감이 낮고 이득은 집중되어 유혹은 강하다.
소극성과 애매성으로 빠져나가는 ‘임자 없는 돈’도 있다. 더 싼 제품이 있음을 알아도 발품 팔기 귀찮거나 뒷말이 싫어 기꺼이 정가를 지불하고, 출장거리가 부풀려지고, 대학원 과제 작성이 초과근무로 둔갑하는 경우다. 신년 회식에서 불참자의 몫까지 사이드 메뉴로 채우는 ‘단합의 순간’ 역시 ‘임자 없는 돈’의 잔치다. 공유지는 이렇게 멍들어간다.
‘임자 없는 돈’이 개인의 탐욕 탓이라는 분석은 발가락이 많아 무좀이 생긴다는 말만큼 무의미하다. 본질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다. 자녀가 교재비를 부풀려 부모 주머니를 털어 오락실로 향하는 것은, 바쁜 부모가 은밀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공적 정보는 직급과 직무에 따라 양과 무게가 달라진다. 실무자가 어떤 정보를 독점하거나 관리자가 특정 정보에 힘을 실어줄 때 ‘임자 없는 돈’의 생태계는 완성된다. 공정성을 위해 설계된 정부 조달 시스템도 마케팅 명목의 골프 접대와 일식집 회동 앞에서는 무력해지곤 한다. 학원비를 아껴준다고 용돈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자녀는 굳이 싸고 엄격한 학원 정보를 부모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이처럼 정보가 그늘에 갇힐 때 공공의 돈은 눈을 감는다.
정부는 매년 청렴 교육을 수없이 되풀이하지만, 구조의 문제를 인간성에 호소한다고 ‘임자 없는 돈’이 깨어나지는 않는다. 우선 정보의 공개와 민주적 소통, 탈권위주의가 필요하다. 특정 업체의 할인 정보나 저렴한 공급처를 눈치 보지 않고 떠드는 직원이 많을수록 누수는 줄어든다. 관리자가 전날 과음했다는 정보가, 생선을 싫어하는 하급직원이 있음에도 점심 메뉴를 복국으로 자연스레 정하는 조직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관리자에게는 원숙한 직무 경험이 요구된다. 도저히 속일 수 없는 관리자는, 차마 속일 수 없는 관리자보다 유능하게 공적기금을 관리한다. 선량하다는 수식어 뒤에는 종종 ‘호구’라는 별칭이 붙는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유성룡은 전자에 속했다. 이기적이지만 충분히 합리적인 인간은 기댓값에 반응한다. 적발 확률이 낮더라도 적발 시 100배 이상의 징벌적 배상과 명예 손상이 뒤따른다면 누구도 감히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의 한 가냘픈 친구는 무상급식인 점심을 두 번 먹는다고 한다. 딸아이가 “넌 왜 살이 안 찌냐, 부럽다”고 물으니, “집에 가면 먹을 것이 없다”고 귓속말을 했다고 한다. 딸아이는 미안해서 귓불까지 빨개졌다. ‘임자 없는 돈’이 커질수록 그 아이의 절실한 밥상이 부실해진다. 그 돈들이 모두 눈을 떠야 한다. 귓속말이었지만, 천둥소리다.
조진태 경남 양산 효암고 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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