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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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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대부분 노년층인 한 마을
새벽부터 부산스럽고 왁자지껄
두서없이 꾸며놓은 골목 정원
주인이 세상 뜨니 활기 사라져

탐매마을은 원도심이다. 주민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저녁 아홉 시쯤이면 골목이 잠든다. 일찍 잠든 마을은 일찍 깬다. 새벽 네 시부터 골목이 부산스럽다. 철 대문 여닫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집 앞을 쓸며 이웃끼리 안부 묻는 목소리에는 조심성이 없다. 그래 놓고 노인들은 한숨 더 아침잠을 주무신다. 한동안 이런 생활 리듬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노인들이 주는 활력을 아끼는 편이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언행들, 특히나 노인들이 사용하는 말씨에 홀리고는 한다. 날이 몹시 추운 날이었다. 산책에 나섰다가 노인들이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도 엉겁결에 따라 들게 되었다. 옷을 벗는데 옆에서 노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시는 분인가 싶어 건너다보았더니 난데없이 “아따, 몸이 참 좋소이” 하고 칭찬한다. 그럴 리가 없으므로 나는 벗은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어떤 장난기도 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복도 안 입고….”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

욕탕에는 노인들 천지였다. 노인들이 온탕에 몸을 담그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온몸에 용과 잉어 문신을 새긴 노인이 욕탕 턱에 걸터앉아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한때 놀았던 양반처럼 보였다. 노인들에게서 마지못해 듣는 기색도 얼비쳤다. 문신 노인은 자기가 요새 문신을 제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씩 병원 다니며 시술을 받는데, 지난 두 달 동안 겨우 이만큼 없앴다고 팔을 들어 보였다. 이제 와서 문신을 왜 지우느냐고 누군가 꿍얼거리자 깨끗하게 가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다. 문신을 싹 지우는 게 자기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노인은 힘주어 말했다. 나는 아랫목에 들듯 욕탕에 몸을 깊숙이 담갔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결말에 다다른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4년 전 이 골목에 세 들 때 ‘골목 정원’이라는 택호 같은 문패를 단 이웃집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2층 양옥을 온통 화분으로 꾸민 집이었다. 낡은 화분, 스티로폼 상자, 고무대야에 사철나무, 벤저민, 동백, 영춘화 같은 걸 심어서 벽체를 위장하듯 층층이 옥상까지 올려놓고 있었다. 귀해 보이는 나무는 없고 정원은 외려 귀살스러워 보였다. 화분 구색을 보자면 동네에 버려진 화분을 모아다가 돌보는 듯했다. 여름에는 산부추와 감자도 화분 틈에서 자랐다. 홍매화 철에는 상춘객들도 그 집 앞에서 걸음을 세우고 신기해하고는 했다.

집 귀퉁이에 동굴 같은 대문이 조그맣게 나 있었다. 그 문으로 다람쥐처럼 드나드는 주인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마치 도시 농사꾼처럼 노인은 정성을 다해 정원을 가꾸었다. 이웃들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했다. 노인의 정원이 골목 경관을 해치고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하루는 정원 주인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막 꽃을 피운 매발톱꽃을 두고 아는 체를 했는데 그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무슨 꽃인지는 모르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핀다고 대견해했다.

골목에는 뭐를 모으는 데 몰두하는 주민들이 있다. 떡방앗간 옆 텃밭에 고철이 봉분만 하게 쌓여 있다. 고물 장사를 하는 사람이 사나 보았다. 그뿐이 아니다. 좁은 마당에 온갖 폐가전과 기계 부품을 쌓아놓은 집이 있다. 재야의 발명가가 사는 집 같다. 정원 할아버지 역시 그런 습성을 가진 분이 아닌가 싶었다.

겨우내 그 골목 정원이 사라졌다. 집을 뒤덮은 화분들이 철거되었다. 시청에서 트럭까지 동원해 사흘이나 치웠다. 화분으로 가려진 집체가, 벽에 설치한 파이프 거치대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노인이 꽤 정성 들여 정원을 꾸민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철거하는 인부에게 무슨 일이냐고 여쭈었다. 노인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노인이 보이지 않았고, 그 집 화분들이 말라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매발톱꽃 화분에는 개망초가 자라고 있었다. 골목은 한결 훤해졌으나 이런 결말은 쓸쓸했다.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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