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늘 기술을 앞당겼다. 인간이 만든 가장 극단적인 상황은 동시에 가장 빠른 혁신을 낳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핵무기는 에너지와 파괴력의 규모를 바꾸었고, 냉전기의 우주 경쟁은 위성과 로켓을 일상의 인프라로 만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인터넷 역시 미국 국방부 연구에서 출발한 군사기술이다. 이렇듯 기술의 역사는 종종 전쟁의 궤적과 나란히 움직였다. 이런 역사 속에서 AI(인공지능)의 등장은 낯설지 않다. 다만 이번에는 기술의 위치가 다르다. 과거의 군사기술이 파괴력과 이동 능력을 확장했다면 AI는 전쟁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전쟁이 도시와 국경 같은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면, 오늘날의 군사작전은 데이터 위에서 설계된다. 최근 중동의 무력 충돌에서도 확인되듯 현대 군사작전의 목표는 도시 전체가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시설에 집중된다. 환경과 지형보다 좌표와 패턴이 중요해지면서 전장은 지도보다는 정보의 밀도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런 전쟁은 정확한 정보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위성 영상, 통신 기록, 금융 흐름, 이동 패턴, 온라인 활동 같은 방대한 데이터가 동시에 분석되어야 한다. 문제는 아무리 체계적인 조직이라도 모든 정보의 흐름을 직접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AI의 개입은 필연에 가깝다.
군사와 안보 영역에서 AI는 기존 화력 무기와 차별점을 둔다. 군사적 AI 기술의 목적은 파괴보다는 ‘식별’과 ‘해석’에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 드론, 기뢰 등이 전쟁의 실행 기관이라면 AI는 감각기관에 가깝다. 무엇을 위협으로 읽을 것인가, 무엇을 목표로 분류할 것인가, 어떤 신호를 행동의 근거로 삼을 것인가 등, AI 도입의 핵심은 파괴 이전의 국면을 장악하는 데 있다.
미국 국방부의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은 드론과 위성 영상 속 목표를 자동으로 식별하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는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분석체계로 결합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위성통신망이 군 작전의 핵심 인프라가 되면서 위성 서비스 중단 가능성 자체가 전장의 변수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작전에 도입한 AI ‘라벤더(Lavender)’ 역시 대량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잠재적 표적을 추려냈고, 인간은 그 위에 최종 승인만 덧붙였다. 공격 버튼을 누른 것은 사람이지만 무엇이 먼저 표적 목록에 올라갈지를 정한 것은 알고리즘이었던 것이다.
기술철학자 랭던 워너의 말처럼 기술에는 정치가 있다. 어떤 기술은 단순히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권력구조를 조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 정부와 AI 기업 사이에서 벌어진 앤스로픽 사례는 이 변화를 잘 보여준다. 정부가 안전 제한 완화를 요구하자 회사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양측은 법적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국내 전문가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은 이를 “정부가 AI 기업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해석하지만, 해당 질문은 현실을 잘못 읽고 있다는 증거다. 국가가 기업이 제공하는 기술 인프라에 의존하기 시작한 순간 정부는 이미 우위를 놓쳤다.
앤스로픽과 미국 정부의 충돌을 둘러싼 반응에서도 드러나듯 우리는 여전히 국가 대 기업, 통제 대 자유라는 익숙하고 조금은 게으른 구도로 상황을 해석한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규제 갈등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정부와 빅테크의 긴장관계 속에서조차 기업들은 단순한 계약업체 이상의 위치에 서 있다. ‘착한 놈’으로 평가받는 앤스로픽의 입장문조차 자세히 읽어 보면 정부 권한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한다는 판단에 가깝다. 기술이 더 성숙했다면 약 1500만달러 가치의 이 판단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정부의 기업 통제라기보다 기술관료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알고리즘 인프라가 국가 기능을 떠맡는 테크노 봉건제에 가깝다. 과거 기술관료제가 관료와 공학자의 지배를 의미했다면 오늘날의 기술관료제는 서버와 모델, 데이터센터의 형태를 띤다. 기술 자체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더라도 결국 기술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이들에 따라 사회의 방향은 다시 짜인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로부터 사실상 무상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전한 이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민간 기업들, 그중에서도 극히 제한된 수의 결정권자들이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가 기술 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틀로 문제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현실의 흐름은 이미 그 고정관념에서 멀어지고 있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여전히 국가이지만 전쟁을 이해하고 위협을 식별하며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판단 장치는 점점 국가의 몸에서 분리되고 있다. 21세기의 전장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현실을 먼저 읽고 더 빨리 표적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전쟁의 표적을 정하는 순간 권력의 위치는 드러난다. 그리고 그 권력은 이미 국가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반휘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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