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새 ‘안보아키텍처’ 준비
‘군사주권’ 완성에만 골몰 말고
그 이후 역할 분담·질서 설계해야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올해 을지프리덤실드(UFS) 한·미연합훈련이 갑작스럽게 축소됐다. 애초 11일간 예정됐던 훈련은 5일로 줄었고 야외 기동훈련도 일부 축소됐다. 이를 두고 다시 한·미연합훈련의 축소가 대북 억제력을 약화시키는가, 북·미 대화 재개 계기가 될 것인가를 둘러싼 익숙한 논쟁이 재개됐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일련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UFS의 목표로 ‘즉각 전투태세(Fight Tonight)’와 함께 ‘한·미동맹 현대화’와 ‘동북아시아 안보환경 조성’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에 저장된 미군 사전배치물자(APS-4)를 신속히 분배·준비함으로써 “제1도련선 내에 전투력을 신속히 투사하고 핵심 지형을 확보하는 능력”을 검증한다고 밝혔다. 제1도련선은 일본에서 대만을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공간이다.
한쪽에서는 북한을 의식해 연합훈련을 줄이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에 비축된 군수물자를 활용해 제1도련선으로 전투력을 투사하는 훈련을 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는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역할 분담 구상으로 볼 수 있다.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은 부유하고 역량 있는 동맹국들이 자기 지역의 안보에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2026년 미국 국가방위전략(NDS)은 이를 한반도에 더욱 명확하게 적용했다. 한국은 북한 억제에 일차적 책임을 질 능력이 있으며, 미국은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논리는 전작권 전환과 맞닿아 있다. 한·미 양국이 합의한 미래연합사 체제에서는 한국군 4성 장군이 사령관을 맡고 미군 4성 장군이 부사령관이 된다. 한국이 한반도 전구의 재래식 방위를 보다 주도하게 된다면 미국은 그만큼 한반도에 묶여 있던 전력을 다른 지역에 운용할 여지를 얻게 된다. 한국에는 더 큰 방위책임을, 미국에는 더 큰 전략적 유연성을 부여하는 구조다.
그렇다면 전작권 전환은 단순히 ‘누가 연합군을 지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는 미군 4성 장군 한 명이 한미연합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을 겸한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연합사의 지휘권은 한국군이 맡게 되지만 유엔사까지 한국 지휘 아래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유엔사는 1950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미국이 지휘하도록 만들어진 별도의 다국적 사령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작권 이후에는 한국군이 지휘하는 미래연합사와 미국이 지휘하는 유엔사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최근 유엔사가 판문점 경비와 정전협정 집행 기능을 묶는 새로운 여단급 조직을 검토하면서 한국 국방부와 이견을 보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유엔사는 내부 조직개편이라고 설명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와 관련해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듯하다. 다만 전작권 이후 유엔사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논의임을 보여준다.
연합훈련 조정,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유엔사 조직개편은 각각 서로 다른 사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방향이 보인다. 한국은 한반도 방위에 더 큰 책임을 지고,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더 큰 작전적 자유를 확보하며, 유엔사는 정전 관리와 다국적 증원·군수지원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새로운 안보 아키텍처가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한·미 간 하나의 청사진으로 논의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전작권 논의는 여전히 ‘언제 전환할 것인가’, ‘조건을 충족했는가’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전환 날짜보다 중요한 것은 전환된 다음 날부터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전작권 전환을 군사주권의 완성으로만 바라볼 때가 아니다. 그것은 한·미동맹의 역할 분담과 동아시아 안보 구조를 다시 짜는 출발점이다. 미국은 이미 전작권 전환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질서를 공동으로 설계해야 한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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