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12일(현지시간) 폐막된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거머쥔 이창동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한국 영화가 이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14년 만이자, 심사위원대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은 부유한 남편(조인성 분)을 둔 다큐멘터리 감독(조여정)이 작품 제작을 위해 해고 노동자 부부(설경구-전도연)를 만나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고 소비하는 행위의 윤리를 묻는다. 심사위원인 홍콩 영화의 거장 두치펑 감독은 “영화에 담긴 모든 디테일을 좋아한다. 나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상찬했다. 이 감독은 오래전인 2002년 영화 ‘오아시스’로 베네치아영화제 감독상과 함께 문소리에게 신인배우상을 안긴 이래, 2007년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전도연) 및 2010년 ‘시’로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에 이어 이번에 다시 심사위원대상까지 받으며 한국 영화계의 거장임을 세계에 알렸다.
이 감독이 예술 여정을 시작한 것은 영화가 아닌 문학이었다.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1983년 중편소설 ‘전리(戰利)’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해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 들어선 그는 1997년 한석규 주연의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 주옥같은 작품을 통해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하는 뜻밖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 상을 주신 것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밝힌 이 감독. 장발(長髮)이 인상적인 그가 다음 영화로 우리에게 무엇을 묻게 될까.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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