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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요청 회신만 수개월… 해외도피 수배자 “나 잡아봐라”

입력 : 2014-03-17 06:00:00 수정 : 2014-03-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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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폴 가입 반세기… 국제공조 수사 ‘장기화’ 반복 왜
우리나라가 1964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가입한 지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다. 인터폴에 가입된 국가는 190개국이다.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은 나라도 31개국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와 손발이 맞지 않아 용의자 소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수사가 장기화되거나 해외에서 전산망을 통해 범죄를 저지르는 ‘몸통’을 검거하지 못한 채 국내에서 지시를 받아 활동하는 ‘피라미’들만 잡는 꼬리자르기식 수사관행이 나타나고 있다.


◆반복되는 수사 장기화


16년 넘게 미제로 남아 있던 이태원 살인사건의 주범 패터슨은 송환 결정이 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미국에 있다. 그는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주종필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미국으로 도주했다. 2012년 10월 미국 LA연방법원은 한국 검찰이 낸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청구를 재판 1년 만에 받아들였다. 그러나 패터슨은 미국 법원에 인신보호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해 현재까지도 송환을 피하고 있다.

최근 경기 부천에서 발생한 귀가여성 살해사건도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부천시 원미구 상동의 아파트에서 한 남성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던 회사원 A(30·여)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용의자인 러시아인 B(34)씨는 수사망을 피해 자기네 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경찰은 인터폴 수배를 내리고 법무부는 러시아 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다. 해외도피사범 수사가 장기화되면 수사 의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공소시효 만료로 미제 사건으로 남기도 한다.

다행히 1995년 범죄인이 해외로 도피할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형사소송법이 개정됐지만, 이마저도 해당 국가와의 법률 차이 등으로 효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15년 전 경기 동두천시에서 발생한 성매매 여성 살인사건이 단적인 예다. 1999년 1월 동두천시 보산동의 한 주택에서 45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용의자였던 미군이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수사본부는 해체됐고, 국내법 적용에 예외를 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지난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인터폴을 통해 수사 기록 또는 진척상황 등을 요청해도 회신을 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게 예사”라며 “해외도피사범이 도망가는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다 보니 사실상 수사를 중단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프랑스 리옹시에 있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사무총국의 모습. 사무총국은 190개 회원국 간 연락 및 수사협조 요청의 창구 역할을 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제 양산하는 국가 간 수사공조체계


국가 간 형사사법절차나 형량의 차이, 문화적 차이와 자국민 보호주의는 공조수사를 어렵게 하는 주요인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 미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었지만 SOFA 협정에 걸려 미군 피의자에 대한 ‘특혜’를 손놓고 보고 있다.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서도 공조수사의 한계가 보인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은 인터폴 가입국인 데다 우리나라와 2000년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중국의 범죄인인도법은 대상자가 중국 국민일 경우 요청을 거절하도록 규정돼 있다. 총책이 좀처럼 검거되지 않고 보이스피싱 사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다.

해외주재관 영사로 근무했던 한 경찰 간부는 “국가별로 형사사법절차와 죄의 형량이 다르다 보니 수사공조가 쉽지 않다”며 “범죄인을 붙잡더라도 자국민일 경우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수사가 진척되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각국의 형사관할권과 인터폴 공조가 결합한 공권력 직접이행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8개 회원국이 체포영장제도를 통해 범죄인 인도와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해외도피사범을 방치하는 문제는 2∼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가 간 형사사법권을 인정해주면서 범죄인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를 구체적인 합의를 통해 형성해나가고 범죄관련 정보와 후속조치 등 정보를 수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죄를 근절한다는 근본 취지에 맞게 국가 간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영탁 기자 o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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