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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해제, 대기발령, 직원 정리"…'양진호'는 여전히 회사에 있다

입력 : 2018-12-22 10:00:00 수정 : 2018-12-24 16: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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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물] 양 회장 공익제보자 A씨 인터뷰 / 양진호 제보자 "일본도로 닭 기절시킨 뒤 11번인가 내리쳐 충격, 준비했다" 구속된 양진호(47)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각종 갑질과 폭행 등의 혐의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던 중심엔 위디스크 직원 A씨의 제보가 있었다. 2015년 양 회장이 한 직원의 뺨을 때린 영상이나 2016년 회사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활과 칼로 닭을 죽이도록 강요한 엽기적인 영상 등 A씨가 언론에 제보한 자료들은 양 회장의 갑질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단초가 됐다. 보도 후 당국은 수사에 들어갔고 양 회장은 결국 구속됐다. 그는 현재 폭행, 음란물 유포, 방조 등 10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폭행과 강요 혐의 등으로 체포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지난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압송될 때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일보는 양 회장의 폭행과 갑질 등의 혐의가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의 한 카페에서 공익제보자 A씨를 만났다.

양 회장은 구속됐지만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최근 회사에서 직위해제 된 A씨는 인터뷰 내내 혹여 가족들에게 피해가 있을까 하며 신분 노출을 극도로 걱정했다. 공익제보 후 받은 스트레스로 심리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제보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도로 닭 기절시킨 뒤 11번인가 12번인가 내리쳐 충격...제보 준비”

―양 회장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나.

=“9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돼 조그만 마트에서 한 달에 120만원 받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지인이 후배가 하는 회사가 있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해 그분 통해 입사하게 됐다. 양진호가 지인 회사의 알바로 있었다고 하더라.”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공익제보자 A씨. 김경호 기자
―이후 한국미래기술 법무이사를 할 정도로 양 회장의 신뢰를 받았다. 어쩌다 제보를 선택한 것인가.

=“무슨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구나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나. 처음 양진호와 부딪치게 된 것은 ‘도청 건’이었다. 직원 도청프로그램을 만들고 저에게 관리하라고 시키더라. 직원 휴대폰을 해킹해 도청한다는 건 직원들을 대변해오던 내 기준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 양진호가 사무실에서 교수를 폭행하는 사건이 터졌다. 사람을 폭행하고 보복행위로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는데 (법무이사로서) 과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반대했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런 일이 반복됐다. 몰래 해서 양진호에게 인정받을 것인가 아니면 불법이고 잘못된 거니까 못하겠다고 거부할 것인가.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섰는데 나는 싸우는 걸 선택했다. 한번은 양진호가 내 기를 눌러보려고 한 것 같다. 영상에서 활로 닭을 잡으라고 제일 먼저 강요한 직원이 바로 나다. 많은 직원 앞에서 모욕감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하기 싫었지만 수백번 머릿속에 되뇌었다. ‘어렸을 때 이모가 닭을 잡아 백숙을 끓여 주셨어’ ‘직원들끼리 먹을 거니까 죄가 아냐’. 그 상황자체가 공포였다. 영상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일본도로 닭을 기절시킨 뒤 그걸 또 칼로 11번인가 12번인가 내리치더라. 너무 충격이었다. 현장에 있던 직원 2명이 그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이후 그 직원에게 영상을 받아 제보를 준비했다.”

◆“10월 초 양진호 직원 폭행 영상 발견돼 취재보도 급물살”

―그 이후 과정이 궁금하다. 수사 기관이 아닌 언론에 제보하게 된 계기는.

=“수사기관에 제보하면 사안이 살해, 강간 등 중범죄가 아닌 이상 체포되지 않더라. 긴급체포가 아니면 수사기관에서 제보자가 누군지 특정될 수 있고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 양진호는 더군다나 폭행을 일삼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2년 전 교수 폭행사건과 디지털 성범죄 영상 업로더 건 등을 언론에 제보했다. 당시 가지고 있던 자료들이 분명 범죄사실이긴 했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목격자를 찾기 힘들었다. 기자들과 지인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놨더니 ‘이거 제보해봤자 구속되기 힘들다’ ‘구속 안 되면 너가 죽는다’ ‘직접 범죄만 하지 말고 그냥 (회사) 다녀라’ 등 부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그랬는데 올 10월 초 동영상 하나가 발견됐다. 이게 양진호가 직원의 뺨을 때린 동영상이다. 나는 사건 당시 현장에 없었다. 그때 영상을 찍은 직원이 자기 컴퓨터가 없다고 양 회장에게 파일을 보내달라고 했고 나는 USB를 노트북에 꽂아 이메일로 보내줬는데 그게 내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던 것이다. 집에서 옛날 가지고 있던 하드디스크 파일을 정리하는데 사진이 아닌 것이 있어 눌렀더니 그 영상이 돌아가더라. 두 동영상을 언론에 말했더니 ‘이거는 가야겠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자들과 함께 양진호의 불법행위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양진호 회장 갑질 영상. 뉴스타파 캡처
◆“‘감당할 수 있냐’고 물으니 숨 거칠게 쉬며 ‘안 쫄린다’라더라...기억 생생”

―셜록 박상규 기자가 2년 전 A씨와 만남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자들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양 회장이 했던 갑질, 수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얘기 등 다 해주니 많이 긴장하더라. 그래서 ‘쫄리면 뒤지라고, 나중에 법조비리까지 가는데 감당할 수 있냐’고 물으니 후...후...숨을 거칠게 쉬면서 ‘해야죠 뭐, 안 쫄립니다, 감당해야죠.’라고 하더라. 보도가 나가기 전 기자들에게 제시한 3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 제보 자료들은 주지만 영상에 나온 피해자, 폭행당한 교수를 만나 (보도에) 동의하는 인터뷰를 받아와라. 두 번째, 셜록만 가지고 안 된다. 방송국을 데려와라. 세 번째, 나를 보호할 시민 단체를 하나 붙여 달라. 그래서 셜록이 한 시민단체를 찾아갔더니 ‘이게 공익이냐 사익이냐’를 따지며 거부했다고 들었다. 일부 방송국에 양진호 건을 제보했더니 ‘대기업도 아닌데 이걸 다뤄야 하냐’고 거절당했다. 이후 뉴스타파가 함께하게 됐고 기자들이 피해자 인터뷰, 교수 동의 등 다 받아와서 ‘시작’하게 됐다. 거기까지 내 역할이었고 나머지는 언론이 취재하며 밝혀진 것들이다.”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공익제보자 A씨. 김경호 기자
◆“첫 방송 나가고 한달 힘들어...새벽 2, 3시 귀가”

―공익제보 당시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가장 두려웠던 시점은 뉴스타파에 첫 회 방송이 나간 직후였다. 10월 30일 첫 방송 나가고 한 달은 정말 힘들었다. 집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없나 살피고 집에 새벽 2~3시에 들어갔다. 너무 예민한 공포심일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엔 그랬다. 기자들과 스케줄 얘기하다가 순간 패닉이 오더라.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1월 초쯤 이렇게 있다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사 소속 변호사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의 공익신고 제도를 활용했다. 공익신고자 신분이 되면서 약간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국민권익위, 인사 등에서 법적 보호장치 있어”

―직접 경험해보니 공익제보 제도는 어땠나.

=“공익제보 신청을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에 넣을까 국민권익위에 넣을까 고민했다. 나는 권익위를 선택했다. 권익위가 수사기관의 처리과정을 공유하며 (수사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 수사기관에서 혹시라도 공익신고를 이유로 부당하게 처우하면 권익위에 가서 ‘고자질’도 할 수 있었다. 공익신고 요건이 몇 개 있었지만 이미 양진호 사건이 너무 유명해져서 굉장히 신속하게 되더라. 경찰 신변보호조치가 됐고 얼마 전 회사에서 직위해제를 당하고 대기발령이 났는데 권익위가 인사 및 불이익조치로 조사를 시작할 것 같다. 그런 법적보호장치가 있는 거다.”

위디스크 사무실. 연합뉴스
◆ 직위해제 된 A씨…“양진호 영향력 여전”

A씨는 지난달 ‘귀하는 2018년 11월 30일 오전 10시자로 법무팀 이사에서 직위 해제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양 회장과 회사로부터의 보복이었다.

―왜 갑자기 직위해제됐나, 회사에 아직 양진호의 영향이 남아있는 건가.

=“양진호가 회사에서 손을 뗀다고 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아직 남아있다. 지금도 언론, 수사기관에 비판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직원)들은 다 잘리고 있다. 경찰 진술할 때 보면 회사 변호사가 붙어서 들어간다. 회사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면 반대편으로 몰아간다. 아직도 회사 내에 양진호 세력이 있다. 수사가 강력하게 들어온 만큼 수사 방해활동도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새로 대표이사가 부임했다. 다 양진호 편이니 직원들 다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 그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

―직위해제 뒤 회사에서 반대파로 몰린 이는 어떤 상황인가.

=“개인적인 인연이 파괴됐다. 회사 사람들하고 가까운 사이였는데 이것으로 다 파괴되고 그 가족들에게도 큰 상처를 줬고 저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저를 공격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양진호 회장 폭행 피해자 K씨. 뉴시스
◆“디지털 성범죄 영상 웹하드 업계에서 사라질 것”

-일부 여성단체가 A씨 역시 웹하드 카르텔에 가담했다며 공격하고 있다고 들었다.

=“웹하드가 음란물로 돈을 많이 번건 사실이고 그런 부분에서 음란물 사업을 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런 부분을 비판한다면 일 리가 있다. 하지만 저는 음란물과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다르다고 본다. 저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과 관련해선 여성단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는 최소한 우리 사이트하고 웹하드 업계에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유통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2년 전부터 지인들과 함께 실제 수사기관에 고소도 하고 언론에 제보도 하며 이 부분을 이슈화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실제로 업로드 했던 분을 만나 세달간 자수도 권유했다. (이분이) 자수하기로 했는데 막판에 나타나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가려내는) DNA필터링에 관련해서도 제가 먼저 소개했다. 2년 전부터 DNA 필터링 도입을 주장했는데 드디어 내년 1월부터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한다고 하더라.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아마 웹하드 업계에서는 거의 사라질 거다.”

◆“피해자들 회복돼 보람...제보 필요없는 곳에서 일하고파”

―공익제보 후 양진호 사건이 커지면서 든 심경이 궁금하다.

=“지난 10월인가 공익요원이 장애인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는 영상이 언론에 제보돼 장관까지 나서 사과한 일이 있었다.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했는데 그 이유를 대답하지 못했다. 돈이 되나, 뭐가 되나. 아무 이득도 없는데 왜 하려고 하는가. 영상을 보면서 제보가 안됐다면 지금까지 저 장애인은 구타를 당하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보자’했다. 보람은 있다. 양진호에게 폭행을 당한 뒤 섬에 살고 있던 직원의 피해가 회복됐고 교수도 억울해하다 양진호가 구속되고 명예가 회복됐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아마 웹하드 업계에서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피해자분들 구제한 것에 대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돼서 다행이다.”

―공익제보할 일에 또다시 마주한다면 할 수 있겠나. 향후 계획은.

=“그건...쉽지 않을 거다. 제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 지금도 신용불량자에 집도 없고 차도 회사차를 끌고 다닌다. 여기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회사에서 해고시키려고 할 것 같다. 다만 향후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보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이 사건을 잘 수습하고 생각해볼 예정이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이 없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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