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데이터 활용 능력 따라 정책효과 상이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인 요즘 선거판을 메우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인공지능(AI)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예사롭지 않다. 생성형 AI를 넘어 범용 AI의 시대가 머지않아 일상화될 것을 고려하면, 정부를 포함한 공공 부문에서 AI의 본격적인 활용은 시간문제이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의 학습을 위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며, 현 정부가 데이터에 초점을 둔 플랫폼 구축을 진행 중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열린 정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 열린 정부는 투명한 정부이며 그 핵심은 모든 정보나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고 공개할 거냐 말 거냐 망설일 때는 공개를 우선하라(openness prevails)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비슷한 시기 이명박 대통령 때 ‘공공데이터 개방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2013년) 우리 정부의 공공데이터 개방이 본격적으로 물꼬를 텄다. 그 결과 데이터 개방은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실적이 기대된다.
데이터는 개방이 목적이 아니며 개방된 데이터가 활용되어야 비로소 데이터의 생애주기가 완결된다. 정부도 내부적으로 데이터 활용에 관심을 두고 이를 촉진하기 위하여 ‘데이터 기반 행정 활성화 법’(2020년)을 제정하였다. 비슷한 입법적 노력은 영국이나 미국에도 있었으며, 정부 의도는 행정의 합리성 제고, 특히 정책의 과학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런 노력은 자연스럽게 더 큰 데이터 덩어리, 이른바 빅데이터 구축으로 연결되었고, 문재인정부 시절의 데이터 댐이나 현 정부의 데이터 레이크와 같은 레토릭은 데이터가 있으면 자동으로 활용이 된다는 가설에 기반한다.
문제는 데이터를 포함한 정책 자료를 수집하여 활용한다고 해서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행위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적어도 데이터는 정부의 합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전부는 아니다. 합리적인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몇 요인 중 데이터는 하나의 근거일 뿐이며, 공무원이 과학적이며 분석적인 사고를 할 때 합리적인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는 사회현상에 숫자를 입힌 것에 불과하다. 빅이든 스몰이든 데이터는 겉으로 드러나는 평균적 경향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데이터의 가려진 진실과 상호 연결 속에 존재하는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것이며, 해석이 제대로 될 때 정책의 합리적 근거로써 활용 가치도 커진다.
눈에 보이는 데이터의 행동 패턴에 숨어있는 다양한 뜻을 찾아내는 것이 데이터 분석의 핵심이며, 깊고 두꺼운 데이터 이른바 식(thick) 데이터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결국 쓰임새 없이 축적된 데이터보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는 공무원의 사고 능력이 더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 대한 데이터와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사고력이 체계적 분석을 통해 결합될 때 정부 정책이 합리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생전에 ‘합리적인 정책’을 K팝, 민주주의와 함께 한국의 3대 소프트 파워 자원으로 꼽은 적이 있다. 그의 진단을 국민이 흔쾌히 공감할 수 있도록 정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정책의 본질에 대해 눈감고 디지털 기술이나 데이터만 활용하면 정책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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