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땐 경찰 권한 비대화 부작용
내외 통제 강화 자정 착수에 기대
‘정치적 중립’ 대통령 의지가 중요
“그는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암살 총탄으로부터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두려움 없는 용기(fearless courage)를 증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경호 최고 책임자에 션 커런을 임명하며 발표한 성명의 대목이다. 지난해 7월 대선 유세 중 발생한 암살 시도로 트럼프의 오른쪽 귀에 총알이 스쳤다. 피격 직후 피 묻은 얼굴의 트럼프는 성조기 아래에서 경호관들 엄호를 받으며 주먹 불끈 쥔 오른손을 들어 보이는 강력한 이미지로 승기를 잡았다. 바로 이 장면이 포착된 사진에서 트럼프를 감싸 안은 우측의 선글라스맨이 커런이다. 찰나의 순간 ‘인간 방탄복’의 책임을 과감히 수행한 커런은 2001년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특무국, 즉 시크릿서비스(US Secret Service)에 들어가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남북전쟁 후 만연한 위조화폐 범죄대응을 위해 1865년 재무부 아래에 설립된 USSS는 1901년 제25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사건을 계기로 경호 업무도 맡았다. 지금은 국토안보부 산하에서 대통령 등 주요 인사 경호와 금융범죄 수사를 한다. 역대 대통령은 전문성을 감안해 주로 내부 인사를 최고 책임자로 앉혔다. 2000년대 수장 9명 중 예비역 해병대 소장 한 명을 빼면 모두 내부 출신이다. 경호관 개인 일탈로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USSS 수장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사례가 거의 없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 대통령경호처는 어떠한가. 1963년 경호실 창설 이래 수장을 중심으로 정치적 논란에 선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번엔 처장 직무대행 김성훈 차장 주도로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해 다수 국민에게 정당한 공권력에 맞선다는 인상을 줬다. 그 후폭풍이 만만찮다. 12·3 사태 후 국회에는 경호처의 영장 집행 방해 금지, 파면 대통령의 경호대상 제외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경호법 개정안 18건이 무더기 접수됐다. 이 중 6건은 경호처를 없애고, 임무를 경찰에 넘긴다는 내용이다.
경호처 폐지론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워버리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이승만 시대 경찰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승만 정권 경찰은 국내 정보수집, 보안수사, 대통령 경호 업무를 총괄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권력자 이기붕 부통령에 이어 부부(副副)통령으로 불린 경무대 경호책임자 곽영주 경무관이 4·19 혁명 후 교수형에 처해진 것도 이런 흑역사와 관련 있다. 정보수집, 공안기능에 수사권 조정으로 강화된 수사 권한, 여기에 대통령 경호까지 맡으면 경찰의 막강 파워를 견제할 기관은 없다. 입법·행정·사법부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듯, 행정부 내 각 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도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 관점에서 긴요하다. 19대 대선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찰청 산하 대통령경호국 설치를 공약했다가 집권 후 마음을 바꾼 것도 현실적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경호처는 조직을 ‘사병(私兵) 집단’이라 자칭했던 ‘희대의 경호관’ 김 차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내외 견제와 통제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쇄신에 나섰다. 안경호 처장 직대를 위원장으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처장의 국회 출석 의무화, 준법담당관 신설, 개방형 감사관 공모 등을 추진한다. 자정을 통해 미꾸라지 몇 마리가 흐려놓은 충성, 명예, 통합의 가치를 조속히 회복하기 바란다.
대권을 놓고 격전을 벌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등 대선 후보에겐 당부가 있다. 당선되면 경호 수장에 정치적 측근, 동지를 앉히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라는 것이다. 역대 수장 20명 중 4명을 제외한 전원이 군경 출신이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인사가 대통령 권세로 호가호위하면서 내부에서 경호 본질에서 벗어난 업무를 강요하거나, 친정인 군경은 물론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전직 처장 김용현은 아예 내란 혐의를 받는다. 경호관들이 인간 방탄복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조직 내부의 노력과 함께 경호 전문 조직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대통령 의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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