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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말하는 유령들 [이지영의K컬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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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5 22:51:11 수정 : 2025-06-05 22: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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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노동은 일상적이지만 가장 외면되기 쉬운 주제다. 산업재해 소식을 접하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정작 그 문제의 구조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익명 속에 묻혀 버린다. 현실 정치와 제도는 노동의 고통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중문화 역시 노동을 전면에 다룬 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방영을 시작한 한 드라마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5월 말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은 국내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 문제 해결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코믹 판타지 활극이라는 장르 안에 노동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녹여낸 이 작품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유령들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기 위해 분투하는 노무사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존의 의사, 변호사, 검사 등 드라마 속 익숙한 전문직 캐릭터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노무사’라는 직업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점에서 신선함을 준다.

 

특히 이 드라마는 단순한 직업군 소개에 머물지 않고 유령이라는 판타지적 장치를 결합함으로써 현실적 문제와 비현실적 상상력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이를 통해 노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보다 넓은 시청자층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드라마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균형 있게 담아낸 시도가 돋보인다. 산업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유령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적 상상력을 넘어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노동 문제를 상징적으로 조명하는 서사적 장치로 읽을 수 있다.

 

이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반복되는 산업재해와 그로 인한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동시에 유령이라는 비현실적 요소를 활용함으로써 시청자들이 민감하거나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전략적인 서술방식이다. 현실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환상적 코드로 감싸되 그 본질을 흐리기보다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고 때로는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창이다. ‘노무사 노무진’이 보여주는 노동의 얼굴은 바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판타지의 탈을 쓴 유령들의 질문은 그저 픽션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헤매는 공간은 아직도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의 삶의 자리다. 이 드라마가 남긴 여운이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넘어 사회가 외면해 온 질문을 다시 꺼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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