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0월 서윤홍 전 대법관이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박정희정부 말기인 1979년 4월 대법관이 되었다. 얼마 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이 터졌다. 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부장 상고심 재판에 고인도 관여했다. 1980년 5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 전 부장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데 그로부터 불과 3개월 만에 고인은 대법관을 그만뒀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4명의 의견은 갈렸다. 8명은 김 전 부장에게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적용한 것이 옳다고 봤다. 반면 서 대법관 등 6명은 그냥 살인죄일 뿐이라고 맞섰다. “내란죄가 성립하려면 폭동을 일으킬 만한 다수인이 동원돼야 하는데 10·26은 그렇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다수 의견대로 내란 목적 살인죄가 확정됐고, 김 전 부장은 대법원 선고 후 나흘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족은 억울함을 느꼈으나 당시 얼어붙은 사회 분위기 속에 이를 드러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새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는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에게 가혹했다. 서 대법관 등 5명은 1980년 8월 사표를 냈다. 다른 1명은 1981년 5공화국 헌법에 따른 대법원 재구성 당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취임 후 1년4개월 만에 쫓겨나듯 대법원을 떠난 서 전 대법관은 그 길로 낙향해 평생 대구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니 그 심경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10·26 사건 상고심 판결문의 소수의견은 한참 뒤에야 공개됐다. 신군부 입장에선 ‘내란은 아니다’라는 내용이 껄끄럽지 않았겠는가.
김 전 부장 유족의 신청에 따라 무려 45년 만에 10·26 사건 재심이 시작된 가운데 그제 서울고법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변호인들은 “(10·26은) 박정희 개인에 대한 살인 사건일 수 있지만 국헌 문란이 아니었다”며 “피고인(김 전 부장)은 박정희를 살해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를 전하며 “옛 정보기관 수장(spy chief)은 과연 영웅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법원의 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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