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각료 급여 삭감도 공언
여소야대 극복 꼼수 가능성에
‘돈과 정치’ 문제는 뒷전으로
정치부 기자 시절 두 차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논의를 경험했다. 한 번은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정치권의 기득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주장했다. 두 번째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서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원들이 세비만큼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의석을 50석 줄이자고 했다.
의원을 ‘세비 먹는 하마’쯤으로 여기는 정치 불신 현상을 고려하면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두 번 다 흐지부지됐다. 자기 지역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의원들의 반발이라는 현실적 장벽은 둘째치고, 전체 숫자가 줄어들면 의원 개개인의 기득권과 권한은 오히려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논의였기 때문이다. 의원 1명은 과연 몇 명 정도의 유권자를 대표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공감대도 사실 없었다.
최근 일본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로 등장했다. 집권 자민당의 새로운 연립 상대인 일본유신회가 ‘제 살을 깎는 개혁’ 일환으로 정수 축소를 강하게 요구하면서다. 양당 대표가 서명한 연립정권 합의서에는 “10%를 목표로 중의원(하원) 정수를 삭감하기 위해 2025년 임시국회에서 의원 입법안을 제출, 성립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즉시 추진 과제다. 구체적 그림은 아직이지만, 현재 총 465석인 중의원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50석가량 줄이는 방안이 유력하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에 더해 총리·각료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총재선거 때 자신의 공약이었는데, 이번에 총리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다시 꺼내 들었다. 현역 의원으로서 원래 받는 월 129만4000엔(약 1202만원)의 세비만 받고 일하겠다는 것이다. 총리 급여가 월 115만2000엔(약 1070만원), 18명 각료 월급이 각각 48만9000엔(약 460만원)이니 어림잡아 한 달에 995만엔(약 9470만원)씩 혈세를 아낄 수 있다. 의원 정수 축소까지 실현되면 세비와 의원 1명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적지 않은 지출을 줄일 수 있다.
고물가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국민과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뭔가 꺼림직하다. 요미우리신문이 비례대표만 50석 줄어들 경우 정당별 의석수 변화를 추산했더니, 자민당은 9%, 유신회는 13%,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민주당은 14%, 공명당 25%, 레이와신센구미 33%가 줄어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해지는데, 다양한 민의를 반영할 중소·신흥 정당의 국회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지는 셈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를 더 세부적으로 따져봤다. 소선거구 낙선자가 비례대표로 구제되는 석패율제까지 고려해 계산했더니 자민당은 16석, 유신회는 5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양당 의석수가 과반(233석)에 2석 모자라지만, 정수가 415석으로 감소한 상황에서는 212석이 돼 과반선(208석)을 웃돌게 된다. 전국 곳곳에 우세 지역구가 있는 자민당과 간사이 지역 기반이 탄탄한 유신회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까닭에 ‘여소야대’ 구도 탈피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축소 규모가 왜 20%나 30%가 아니라 10%인지, 왜 하필 비례만 건들겠다는 것인지 그 의도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자민당이 최근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며 위기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자민당 일부 파벌의 거액 비자금 조성 스캔들, 이른바 ‘정치와 돈’ 문제였다. 자민당과의 선거 연대 과정에서 이 문제로 유탄을 세게 맞은 공명당은 기업·단체 헌금 수령 대상을 당 중앙 및 광역지방본부로 국한하는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다카이치 총리 태도가 뜨뜻미지근하자 자민당과의 ‘26년 연정’에서 이탈했다.
그로 인해 위기를 맞은 다카이치 총리는 유신회의 의원 정수 축소안을 수용하며 기사회생했다. 여기에 총리·각료 급여 삭감 카드를 던지며 내각 출범 초 지지율도 고공 행진 중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치자금 개혁은 올해 임시국회에서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시작하는 것으로 미뤄뒀다. 정수 축소와 급여 삭감이 본격적 개혁의 징검다리가 될지 제 살을 깎는 시늉에 그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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