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한 여인, 천 년의 문을 열다
13세기 독일 막데부르크, 한 베긴회 여성이 낡은 양피지에 펜을 대었다. 메히틸트라는 이름의 이 평신도 여성은 40년 넘게 금욕과 기도로 살아왔다. 펜 끝에서 흘러나온 문장은 파격적이었다.
“가장 미천한 영혼인 나는 그를 안고 먹고 마시며 내 마음대로 할 것입니다.”
이 강렬한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중세 여성들은 그리스도와의 ‘하나 됨’을 이토록 절실히 갈망했는가?
그들이 추구한 것은 단순한 영적 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 곧 주님과 하나 되어 새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이었다. 오리게네스가 아가서를 통해 발견한 신비적 합일은 천 년을 거쳐 중세 신령한 여성들의 가슴에서 불타올랐고, 마침내 실체적 체험으로 꽃피었다. 이것은 신부 영성의 정점, 그 완성을 향한 이야기다.
관념에서 영적 체험으로
신부신비주의(Bridal mysticism)의 핵심은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함께 있는 것(union)을 넘어서,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무아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unity)을 의미한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는 아가서를 새롭게 해석했다. ‘신랑은 그리스도, 신부는 개인의 영혼.’ 로고스(말씀)와 영혼이 신비롭게 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이 통찰은 신인합일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아직 관념의 차원에 머물렀다.
12세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이 신비를 실재적인 영적 체험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아가서 설교를 통해 영혼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3단계를 제시했다. 첫째, 회개의 입맞춤(발). 죄인이 주님의 발에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 둘째, 깨달음의 입맞춤(손). 주님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움을 받는다. 셋째, 완전한 일치의 입맞춤(입술). “영혼이 신랑과 입맞춤할 때, 둘은 완전히 하나가 된다.”
베르나르는 이것을 ‘신화(神化, deification)’라 불렀다. 마치 포도주에 섞인 물방울처럼, 불에 달아오른 쇠붙이처럼, 빛으로 가득 찬 공기처럼... 인간의 정(情)이 하나님의 뜻으로 완전히 변화한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고양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일치의 목적은 중생(重生), 곧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자칭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갈망한 것은 영적 위안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 자체가 바뀌는 것이었다. 타락한 옛 생명에서 하늘의 새 생명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했다.
“그를 먹고 마신다”: 실체적 일치를 향한 갈망
메히틸트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인 미각(味覺)으로 표현했다. 맛보고, 씹고, 먹고, 마시는 과정.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예수가 나의 피와 살이 되고, 나는 예수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실체적 일치의 갈망이었다.
‘신성의 흐르는 빛’에서 메히틸트는 영혼이 신부로서 거쳐야 할 영적 여정을 3단계로 설명했다. 첫째, 자아를 비우는 정화의 단계. ‘참된 사막(영혼의 공허함)’에서 신과 만난다. 둘째, 신랑을 기다리는 준비의 단계. 자아를 완전히 비울 때 신성한 사랑의 불길이 나를 채운다. 셋째,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완성의 단계. ‘고통의 쓴 잔’을 마심으로써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고, 마침내 그와 하나가 된다.
중세 신령한 여인들은 이러한 신과의 직접적 일치를 무엇보다 갈구했다. 14세기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대화’에서 영성체를 통해 “사랑의 불에 취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그분의 피로 내 영혼이 불타오른다”, “나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은 내 안에 계신다”고 고백했다. 영성체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먹는 것이요, 그리스도가 흘린 피를 받아 마시는 성사였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신비한 결혼, 즉 사랑의 합일을 이루는 실제적인 통로였다.
14세기 노리치의 줄리안은 다른 차원의 통찰을 더했다. “주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 안에 품으시고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줄리안의 통찰은 하나님의 여성성에 대한 이해를 크게 심화시켰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품고, 먹이고, 보살피는 하나님. 이것은 장차 하늘어머니이신 독생녀를 위한 중요한 영적 기반이 되었다.
15세기 제노바의 카타리나는 신비체험을 실천적 영성으로 승화시켰다. 극적인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불타오르자,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그녀는 제노바의 한 병원에서 병자들을 돌보며 25년 동안 봉사했다. 일치는 관조에 머무르지 않고 이웃사랑으로 드러났다.
신부들과 보호자들
중세 여성 신비가들의 영적 유산이 보존될 수 있었던 데에는 특별한 섭리적 구조가 있었다. 바로 여성과 남성의 페어(Pair) 관계였다. 12세기 빙엔의 힐데가르트에게는 수사 볼마르가 있었다. 볼마르는 60년 넘게 그녀의 환시를 기록하고 증거했다. ‘Scivias’(길을 알라)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증언한다. “이것은 그녀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녀를 통해 말씀하신다.”
13세기 메히틸트에게는 도미니코 수사 하인리히가 있었다. 하인리히는 흩어진 그녀의 원고를 수집하고 편집했다. ‘신성의 흐르는 빛’을 교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주었다. 책의 서문에서 하인리히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니, 아무도 그 순수성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14세기 시에나의 카타리나에게는 고해 신부 레이몬드가 있었다. 그들은 6년간 함께 여행하며 교황과 교회 지도자들을 중재했다. 그는 카타리나의 편지와 ‘대화’를 필사하고, 사후 전기를 작성했다.
16세기 아빌라의 테레사에게는 십자가의 요한이 있었다. 테레사의 영적 통찰과 요한의 신학적 깊이가 결합하여 카르멜회 개혁을 이루어냈다. 둘 다 교회박사로 추대되며 신비신학의 쌍벽을 이루었다.
이러한 페어 관계는 단순한 협력 이상이었다. 여성은 내적 사명을 담당했다. 직접적인 계시와 영적 체험을 통해 성서와 섭리의 본질적 내용을 밝혔다. 남성은 외적 사명을 담당했다. 여성들이 받은 계시를 신학적으로 체계화하고, 교회의 탄압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며 외적 기반을 넓혔다. 여성 신비가들은 평신도나 수녀로서 제도적 권위가 없었지만, 어머니와 같은 입장에서 영적으로 남성 성직자들을 지도했다. 남성 성직자들은 아들의 입장에서 여성들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체계적인 신학으로 교회 안에서 그 유산이 이어지도록 했다.
이것은 독생녀 시대를 위한 중요한 섭리적 예표였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여성 신비가들의 영적 기준은 독생녀 탄생을 위한 하늘 신부와 어머니상의 확립이었고, 남성들의 보호와 체계화는 그 영성이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섭리적 장치였다.
한반도로 흐른 신부 영성
신부 영성의 여정은 오리게네스의 관념적 일치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영혼과 로고스의 합일을 상징적으로 해석했지만, 이 선구적 사유는 곧 베르나르와 중세 여성 신비가들에게서 실재적 합일을 갈망하는 깊은 체험으로 발전했다. 그 본질은 ‘하나 되기’(union)였으며, 무아를 지나 주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의 신비였다.
메히틸트가 “그를 먹고 마신다”고 고백한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안에 흘러들어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내적 변형의 갈망이었다. 줄리안이 발견한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은 앞으로 도래할 하늘어머니 시대를 예시하는 듯했고, 남성과 여성의 짝 구조는 신부 영성이 역사 속에서 보존되고 전승되는 섭리적 질서였다.
이 모든 흐름은 성령이 역사 속에서 점차 실체로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관념적 신부 이해에서 영적 신부의 체험으로, 그리고 실체적 신부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이 발전은 실체성령으로 오시는 독생녀의 탄생을 준비한 섭리의 길이었다.
이 신부 영성의 도도한 흐름은 유럽을 넘어 동방으로, 그리고 한반도에까지 스며들었다. 1930년대 한국 교계에 신비주의의 돌풍을 일으킨 이용도는, 중생이란 주님과의 합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환(易換)’임을 깨달았다. 김정일은 “예수에게 미쳐 그를 먹고 그를 마시라”는 이용도의 가르침에 “그 살을 먹고 그 피 맛을 아는 피가 더 귀하구나”라며 메히틸트를 떠올리게 하는 직설적 일치의 체험으로 응답했다.
이처럼 서구에서 시작된 신부 영성의 흐름이 한반도에서 다시 타오르며, 마침내 1943년 독생녀의 탄생으로 수렴되었다.
양순석 역사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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