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효과로 수출 총액 최고치
석유제품·이차전지 등 고전 ‘대조’
실적 낸 수출업체들 달러 안 풀어
수출 증가 효과 내수까지 안 미쳐
물가상승 이어져 민생고 더 가중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의 눈부신 실적에 힘입어 ‘수출 7000억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한국 경제 전반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다. ‘반도체 착시효과’라고 불릴 만큼 반도체 중심의 일부 업종 외에 상당수 기업은 실적 급락에 울상을 짓고 있다. 호실적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수출 기업들의 경우 통상 환경 불확실성과 환율 변동성에 불안을 느껴 벌어들인 달러를 풀지 않고 쌓아두는 등 고환율 문제도 쉽게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자연스레 국내 투자·고용도 주춤하고 고환율·고물가 장기화로 내수경제 위축이 심화하고 서민 가계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지난해 수출 성과만 보면 박수쳐 줄 만하다. 그러나 15대 주력 수출 품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마냥 환호할 수 없게 된다. 각각 전년 대비 22.2%와 24.9% 상승한 반도체(1733억9000만달러)와 선박(320억3000만달러), 대미 관세 장벽에도 불구하고 선전한 자동차(719억8000만달러) 등 일부를 제외하곤 상당수 업종이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중국산 저가 철강 유입과 보호무역주의 확대의 직격탄을 맞은 철강은 수출 실적이 전년보다 9%나 떨어지며 303억달러로 부진했다. 세계적인 공급과잉 여파로 구조 개편까지 몰린 석유화학 역시 수출은 425억1000만달러로 11.4% 급감했다. 일반기계(469억1000만달러)와 석유제품(454억8000만달러)도 각각 8.3%와 9.6% 하락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이차전지 역시 11.9% 감소한 72억3000만달러 수출에 그쳤다. 수출 총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산업 전반의 체감경기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내내 1400원 중후반대에서 움직이며 고환율 기조가 굳어졌다. 수출 기업은 큰 환차익을 거뒀지만 고환율 추세가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달러를 풀지 않고 해외 투자용 등으로 대비해 쌓아두는 경향이 강화됐다. 반대로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들은 ‘악’ 소리가 날 수밖에 없고, 원자재값 인상은 고스란히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민생고를 가중시켰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전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1%였지만 생활물가지수는 2.4% 상승하며 이를 웃돌았다. 생활물가지수는 식료품·외식비·연료비 등 서민 생활과 직결된 품목으로 구성돼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환율 영향을 받는 수입 원재료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연중 누적되며 체감물가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식 물가 지표상으로는 ‘안정’이라는 평가가 가능하지만, 가계가 느끼는 부담은 훨씬 컸다는 의미다. 2025년 동안 실질임금은 월별로 등락을 거듭했지만, 연간 기준으로 보면 물가 상승을 상쇄할 만큼의 뚜렷한 개선 흐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내수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은 더욱 컸다. 원자재와 임차료, 그리고 인건비 등 비용 부담이 동시에 커졌지만 가격 전가 여력은 제한적이었다. 수출 대기업과 달리 환율 효과를 누리기 어려운 구조에서 고환율은 사실상 ‘비용 인상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형상 수출은 증가했지만 그 성과가 고용·임금·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외화내빈’구조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수출은 늘었지만, 그 성과가 고용·임금·소비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를 보이며 반도체 등 일부 산업에 수출이 집중되면서 산업 간·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수출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에 따라 연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무역 장벽이 갈수록 높아지는 등 세계 통상 질서가 재편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세계 경기 부진과 교역 둔화, 기저효과 등을 이유로 올해 수출을 지난해보다 감소한 6971억달러로 전망했다.
결국 반도체 중심의 수출 구조를 완화하고, 수출 성과가 고용과 소득, 내수로 연결될 수 있는 산업·소득구조 개선과 고환율·고물가 환경에서 취약계층의 부담을 완화할 정책적 대응이 올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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