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폐타이어 신발 신고 달렸다…한국에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 안긴 마라토너

관련이슈 스타's , 이슈플러스

입력 :
김리원 기자 rewonv@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올림픽 메달 문턱서 두 번 돌아선 최윤칠
마라톤 없는 첫 아시안게임서 1500m 정상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선수는 누구였을까.

 

시간을 72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1954년, 나라는 잿더미였다.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엔 폐허뿐이었다. 그해 여름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2회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한국의 첫 출전이었다. 선수단은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서야 겨우 꾸려졌다. 변변한 장비도 없었다. 누군가는 밑창에 폐타이어를 덧댄 신발을 신고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첫 아시안게임. 개막 이튿날, 한국의 첫 금메달이 나왔다.

 

종목은 육상 1500m였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선수의 기록은 3분56초2. 당시 아시아 최고 기록이었다. 

 

최윤칠이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1500m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있다. 대한육상연맹 제공
최윤칠이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1500m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있다. 대한육상연맹 제공

 

금메달의 주인은 최윤칠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주종목은 1500m가 아니었다. 평생 달려온 무대는 42.195㎞, 마라톤이었다.

 

손기정의 후배, 마라토너 최윤칠

 

최윤칠은 1928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잘 달렸고 중학교 마라톤 대회에서 3등을 하며 처음 눈에 띄었다. 이후 양정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손기정과 남승룡을 배출한 학교였다. 두 사람은 훗날 최윤칠의 코치가 된다.

 

훈련 환경은 열악했다. 최윤칠은 싸구려 가죽에 자동차 타이어를 덧대고 못을 박은 신발을 신었다.

 

첫 국제무대는 1948년 런던올림픽. 광복 이후 한국이 처음 태극기를 달고 나선 올림픽이었다. 

 

런던은 폭염이었다. 최윤칠은 마라톤에서 38㎞까지 홀로 앞서 달렸다. 뒤 그룹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독주였다. 금메달이 눈앞이었다. 그러나 그는 두 시간 넘게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물을 마시지 말라”는 남승룡 코치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탓이었다. 결국 결승선을 3㎞ 앞두고 탈수와 경련이 찾아왔다. 최윤칠은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했다.

 

1950년 4월 미국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왼쪽부터 고 손기정, 최윤칠, 함기용, 송길윤)이 현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1950년 4월 미국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왼쪽부터 고 손기정, 최윤칠, 함기용, 송길윤)이 현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2년 뒤 최윤칠은 보스턴마라톤에 나섰다. 손기정기념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출전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의 목표는 세 선수 가운데 한 명이라도 우승하는 것이었다.

 

“그럼 제가 앞서서 뛰겠습니다.”

 

최윤칠은 동료들을 위해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했다. 초반부터 앞서 달리며 외국 선수들의 체력을 빼놓는 역할이었다.

 

결승선에서 제자들을 맞던 손기정 코치는 최윤칠이 기권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뒤 최윤칠의 모습이 보였다. 손기정은 벼락같이 달려가 소리쳤다.

 

“윤칠이! 여기가 어딘데 꾸물거리는 거야!”

 

최윤칠은 남은 300m를 전력으로 달렸다. 결과는 3위. 함기용이 1위, 송길윤이 2위였다. 한국 선수들이 1~3위를 휩쓸었다. 손기정은 훗날 “함기용, 송길윤의 1·2위보다 최윤칠의 3위가 더 값지다”고 평했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과의 인연은 끝내 닿지 않았다. 6·25전쟁 중 열린 1952년 헬싱키올림픽 마라톤에서 최윤칠은 4위에 올랐다. 동메달과의 차이는 29초였다.

 

42.195㎞에서 1500m로

 

1954년 한국은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나섰다. 최윤칠도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대회에 마라톤이 없었다.

 

최윤칠은 1500m와 5000m로 종목을 바꿨다. 1500m는 그가 달려온 거리의 28분의 1 남짓. 두 시간이 넘는 레이스에서 체력을 배분하던 선수가 이제 몇 분 안에 승부를 내야 했다.

 

그리고 3분56초2 만에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통틀어 국제종합대회에서 나온 첫 금메달이었다. 그는 5000m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했다.

 

최윤칠(崔崙七)이라는 이름에는 세상의 꼭대기에 일곱 번 오르라는 조부의 뜻이 담겼다고 한다. 그는 올림픽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정상에 섰다.

 

첫 금메달의 이름을 기억하며

 

1954년 마닐라에서 최윤칠이 딴 금메달은 한국 아시안게임 역사의 시작이 됐다. 그는 2020년 10월,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의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리스트라는 이름은 남았다.

 

지금 나고야에서도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금빛을 향해 달린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수많은 금메달의 시작에는 1500m 출발선에 선 한 마라토너가 있었다.


오피니언

포토

레드벨벳 조이, 시스루 룩 입고 뽐낸 늘씬한 몸매
  • 레드벨벳 조이, 시스루 룩 입고 뽐낸 늘씬한 몸매
  • 트와이스 사나, 여신 미모에 섹시미까지…민소매 입고 뽐낸 글래머 몸매
  • 박규영 '수줍은 볼콕'
  • '인턴' 한소희, 고혹적 분위기 속 금발 완벽 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