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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아내가 떠난 지 다섯 달, 약속을 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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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20 10:10:14 수정 : 2015-05-20 10: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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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기 전에 평생 시신을 옆에 두겠다고 약속했는데, 어쩌면 그 약속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 내 말 한마디에 행복해하던 아내의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이제 난 아내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쓰촨(四川) 성 출신인 우리는 34년 전 만났다. 내가 19살, 아내가 15살이던 해였다. 그때의 나는 까까머리 청년이었으며, 무척 가난해서 옷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러나 여자친구가 되어준 당시의 아내는 전혀 나를 깔보지 않았고, 기꺼이 함께 살기를 원했다.

하늘은 무심했다. 행복할 것 같았던 결혼생활이 아내의 ‘백혈병’ 진단으로 산산조각 나고 만 것이다. 아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건 작년 7월, 손을 쓸 새도 없이 아내는 같은해 12월19일 나와 아들을 남겨두고 하늘로 떠났다.

아내가 눈 감기 전, 나는 약속했다. 비록 살아서 함께 하지는 못하겠지만, 시신을 우리 집에 평생 보관하겠다고 말이다. 그것도 내가 죽는 날까지.

내 말 한마디에 아내는 행복한 듯 웃음 지었다. 그리고 아무런 걱정 없이 나와 아들을 이 세상에 둔 채 하늘의 천사가 됐다.

아내가 죽은 뒤, 각종 꽃과 생전의 아내 사진으로 관 주변을 꾸몄다.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안 창고에 마련한 ‘사당’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다 보면 금세 1시간이 지나갔다. 물론 아내에게 “당신 없이 난 살 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은 나를 이해해줬다. 심지어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도 아내가 든 ‘관’을 꺼리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데려온 아이들이 관 주변에서 뛰놀도록 허락했으며, 덕분에 우리 집은 아내가 살아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늘 활기가 넘쳤다.

사실 우리 아들은 아내가 죽었을 때 곧바로 화장하길 원했다. 슬픔을 달래느라 며칠은 보낸다 쳐도 지난해 12월이 끝나기 전에는 화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아내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내가 죽고 나서 내가 무려 28일이나 울며 지냈다고 사람들이 그랬다. 아내가 떠난 슬픔이 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아내는 남은 게 몸밖에 없을 만큼 가난했던 내게 온 천사가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을 떠나보냈으니 한 달 가까이 운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그러나 이제 아내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집에 시신을 보관하는 건 법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다.

최근 우리 집에 들른 경찰 관계자는 “시신을 보관하는 건 병원과 장례식장에서만 허가된다”며 “최장 보관 기간도 5일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에 관리를 의뢰하겠다”고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 이 기사는 중국 쓰촨 성에 사는 장 마오더(53)의 사연을 토대로 재구성되었습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데일리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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