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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자연의 위대함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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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16 22:56:12 수정 : 2025-10-16 22: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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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위세를 떨던 무더위도 이제 숨을 고른다. 쌀쌀함이 약간씩 느껴지는 게 이젠 가을인가 싶다. 심술궂은 여름이 우리를 아무리 힘들게 해도 계절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나니,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한다.

자연의 위대함을 그림으로는 어떻게 나타낼까. 예부터 많은 화가가 자연을 그렸는데 크게 두 가지 예술적 가치, 미와 숭고와 관련된다. 우리가 화사하고 평온한 자연풍경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낄 때, 그때 적용되는 가치는 아름다움이다. 한편 우리는 거친 파도에 휩싸인 바다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산 앞에서도 만족감을 느낀다. 자연의 위력에 압도되면서도 그 안으로 빠져들며 감탄하고 경외심을 갖는다. 여기에 적용되는 가치가 숭고이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1818년경)

숭고를 잘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이고, 이 그림은 그 예 중 하나이다. 무섭게 몰아치는 거친 파도와 자욱한 물안개가 주변의 모든 풍경을 금방 삼켜버릴 것 같다. 바위섬을 가로질러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향해 자연의 위협적인 위용이 뻗어 나가고 있다. 먼 길을 유랑하며 지친 듯한 사람이 지팡이를 짚은 채 노을이 내려앉는 이 광경 속에 푹 빠져 있다. 뒷모습은 평온하게 상념에 잠긴 듯하지만, 절벽 끝 험준한 바위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위태롭고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이렇듯 숭고는 위협적인 자연과 그 앞의 나약한 인간의 대비를 통해 그림 안에 담긴다. 위협적인 대자연에서 느끼는 인간의 한계와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주지적 낭만주의로 불린다. 고전주의가 예술이 과학과 마찬가지로 이성적 활동이라고 했다면, 낭만주의는 그 반발로 예술과 과학이 다름을 주장했다. 주정적 낭만주의가 예술이 이성보다 감성이나 느낌과 관련됨을 강조했다면, 주지적 낭만주의는 예술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세계를 나타낼 수 있다고 보았다. 자연의 위대함과 경외감을 상징하고 암시하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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