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기(世紀)의 이혼’이라면 문자 그대로 100년에 한 번 있을 정도의 요란스러운 이혼을 말할 것이다. 떠오르는 것이 16세기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려는 것에 반대한 가톨릭에 맞서 국교를 성공회로 바꾼 사례다. 20세기엔 세기의 결혼이 세기의 이혼으로 둔갑한 영국 찰스 왕세자(현 국왕)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별도 있다. 21세기 들어선 억만장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파경도 세기의 이혼이라 불렸다.
한때 백년해로를 꿈꿨던 부부의 이별을 입방아에 올리는 호사가들의 행동이 탐탁스럽지는 않지만 어제 한국에서도 세기의 이혼이라고 불리는 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무려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2심 판결을 대법이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SK 측에 흘러들어 갔다고 주장되는 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이 뇌물로 보인다며 도박 자금처럼 불법 자금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 746조를 적용한 것이다.
이번 재판은 사인(私人) 간 소송이었음에도 당사자의 사회적 신분, 혼인 파탄의 경위, 재산분할의 규모, SK그룹 경영권의 향배 등등의 이유로 큰 주목을 받았다. 2심 판결은 300억원 자금의 성격, SK그룹 성장에 임직원의 노력이 반영되지 않은 재산분할 금액 산정 등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다. 이번 판결은 최 회장의 처분 재산은 분할대상에서 제외돼 앞으로 이혼 시 재산분할의 기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룹 지배구조를 둘러싼 최대 위기를 넘긴 SK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정치권과 경제계는 대법이 300억원을 뇌물로 본 점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이 12·12 내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자 중 한 명이었음에도 재임 시 북방정책을 통해 국가의 활로를 개척한 공(功)이 있지만, 불법 비자금 조성의 과(過)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과거 정경유착의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는 기회로도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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