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사태 후 범죄조직이 건물 임대
단지 대부분 신원 확인·출입 엄격 통제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한 건물 단지 입구에서 외국인들이 출입을 위해 검사받고 있었다. 피부색이 각기 다른 이들은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 국적자들로 경비원에게 신원을 확인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차량 출입 역시 통제되고 있었는데, 음식을 배달하는 이들도 단지 출입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진이 웬치 접근하자 경비원은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곳은 중국 범죄단체 조직원들이 근거지로 사용하고 있는 범죄단지로 일명 ‘웬치’로 불리는 곳이다.

시아누크빌 도심에는 이런 식의 범죄단지가 곳곳에 숨어들어 있다. 16일 취재진이 돌아본 범죄단지 7곳은 모두 겉으로 보기엔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주거 밀집 단지로 보였지만,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었다. 6층 높이 건물 열댓 개가 모여 큰 단지를 이루고 있는 경우에도 출입구는 단 한 곳이었다. 외곽은 사람 힘만으론 넘기 어려운 높이의 콘크리트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예 내부에 중국 식당 등 상점가를 갖추고 있는 단지들도 있었다.
본래 해변의 작은 도시였던 시아누크빌은 과거 캄보디아 정부가 일명 ‘제2의 라스베이거스’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개발에 착수한 곳이다. 현재는 범죄의 중심지로 전락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납치·감금 피해 다수가 발생하고 있다.
2015년부터 8년 간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했다는 30대 A씨는 시아누크빌처럼 천지개벽한 곳이 없다고 했다. A씨는 “2018년쯤 시아누크빌에 중국자본이 대거 들어오면서 카지노와 5성급 호텔들이 맨땅에 무더기로 들어섰다”며 “주변에 코롱섬도 있어 관광지로서 투자가 이뤄졌고, 당시에는 범죄 이슈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이 육해상 실크로드를 만드는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기업가들은 시아누크빌을 찾았다. 당시 개발이 진행된 카지노만 100여곳에 달했고 호텔과 리조트는 수십곳이었다고 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상황을 반전시켰다. 코로나19에 따른 격리조치로 중국인들은 캄보디아에 들어오지 못했고 캄보디아 진출을 노린 회사들도 자연스럽게 하나둘 철수했다. A씨는 “화웨이, 진베이 같은 대형 회사들 말고는 대부분 망했다”며 “지금도 짓다만 건물들을 다수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빈 건물이 코로나19 이후 범죄조직의 차지가 됐다. 캄보디아는 외국인이 땅을 살 수 없어 현지 소유주가 10년 단위로 임대를 하는데 임대 계약이 끝난 건물은 땅 소유주 것이 됐다고 한다. A씨는 “외곽지역의 빈 건물들을 범죄조직이 대거 임대했다”고 전했다.
범죄조직원들이 모여들자 현지 물가는 급등했다. 상점 간판은 대부분 중국어로 도배됐고 시아누크빌이 마치 중국의 소도시처럼 보이기 시작한 게 이 때다. 그는 “중국인이 대거 들어온 이후 현지 식당에서는 ‘서울 강남보다 시아누크빌 물가가 더 비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며 “노래방은 방값만 200만원을 받는 경우가 있었고 유흥주점, 클럽 등이 물가를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시아누크빌과 함께 캄보디아 대표 범죄단지로 꼽히는 지역은 포이펫과 바벳이다. 이들 지역은 모두 국경과 가까운 외곽에 있고 카지노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의 경우 훈센 총리 가족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나가월드 카지노가 있어 다른 카지노가 들어서기 어렵지만 범죄단지가 위치한 외곽지역은 중국자본의 카지노가 다수 들어왔다. 현지 교민들은 카지노와 중국인 범죄조직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한다.
시아누크빌에 위치한 카지노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장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되는 일도 빈번했다. A씨는 “중국인들이 군대를 통해 권총과 20발의 탄약을 500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고 했다”며 “카지노에서 게임하다 총격전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A씨는 마약에 취해 시내를 거니는 중국인들을 볼 때마다 공포에 떨었다. 마약의 경우 한국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싸고 흔했다.

각종 범죄 중심에 중국자본이 있지만 캄보디아로서는 중국인들의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캄보디아개발위원회(CDC)에 따르면 올해 1~9월 해외 전체 투자액의 53%가 중국으로부터 왔다.
A씨는 “범죄조직이 경찰과 내통하기 때문에 범죄단지에서 탈출한 한국인이 잡혀서 끌려오는 경우도 봤다”며 “돈만 주면 감옥에서까지 나올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범죄조직들이 캄보디아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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