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교훈삼아 ‘퍼스트무버’ 실천
모바일서 AI로 패러다임 전환 증명
이재명정부 기업 살리기 실천할 때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엔비디아가 세간의 화제다. 지난 10일 미국 증시에서 ‘마의 벽’이라 불리는 시가 총액 4조달러를 최초로 깬 것이다. 2022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총 3조달러(4100조원)를 달성한 애플을 3년 만에 제치고 이뤄낸 기적이다. 당연히 대만 출신의 정보기술(IT) 천재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일거수일투족도 초미의 관심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가치는 주가로 평가된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직원 수 고작 3만명 남짓인 ‘지구상 가장 작은 대기업’이 이뤄낸 성과로는 믿기 어렵다. 엔비디아가 ‘갓비디아’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총 4조달러를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5500조원. 국내 증시가 사상 최초로 시총 3000조원을 넘어섰지만, 비교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일개 기업 시총이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1조9000억달러의 2배를 넘는다는 게 놀랄 따름이다.

전 세계 매체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영국 매체 더선은 “영국 GDP(국내총생산)보다 더 돈이 많은 회사,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는 “AI 시대를 대표하는 엔비디아가 월가의 새 주인공이 됐다”고 극찬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람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 증시 흐름을 보면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1960년대 미 통신장비기업 AT&T와 자동차 회사 GM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1980년대 들어 이들을 시총 1위에서 밀어낸 건 IBM이었다. 이후 소프트웨어 전성시대가 도래하면서 200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이 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10년 만인 2010년 플랫폼 경제를 앞세워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애플이 왕좌에 올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기업 가치를 넘어 ‘모바일 혁명’을 이끌던 애플의 시대가 저물고 ‘AI 혁명’의 상징인 엔비디아가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엔비디아의 기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르면 연내 시가 총액 5조달러 달성도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 중심엔 대만 출신의 IT 천재 젠슨 황이 있다. 그가 글로벌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비결은 단연코 AI다. 대규모 데이터를 동시 병렬처리하는 엔비디아의 AI GPU(그래픽처리장치) 없인 오픈 AI의 챗GPT 구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엔비디아 전체 매출에서 AI GPU가 차지하는 비중은 86%에 달한다. 세계 GPU 시장의 80% 이상을 독점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AI 생태계가 엔비디아냐 아니냐로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엔비디아의 경쟁력은 젠슨 황의 경영철학에서 출발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실패에 가장 관대한 회사가 엔비디아다. 그는 평소에도 “실패에 대한 인내심을 키우라”고 종종 주문한다. 직책과 직급보다는 ‘프로젝트’라는 업무 중심의 수평적 문화구조를 정착시켰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있어도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다”며 솔선수범하는 젠슨 황 앞에서 직원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 대가는 확실한 보상으로 돌아온다. 글로벌 빅테크(거대기술기업) 평균 이직률이 17%를 훌쩍 넘는데도 엔비디아는 고작 2%대에 불과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2003년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인재경영론이 새삼 떠오른다. 엔비디아와 손잡고 세계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태계를 석권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퍼스트무버’ 자격이 충분하다.
정부의 역할도 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민간 중심으로 재편했다. 위원회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토대로 민관이 ‘원팀’이 돼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기업의 성공은 인력이나 기술력, 자본력과 더불어 시대정신을 얼마나 잘 구현하고 실현하는 데 달려 있다.
‘코스피 5000시대’를 공언한 이재명 대통령은 ‘GPU 5만개 확보’ 등 100조원을 AI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과 내각에 LG·네이버 등 기업인 출신 AI 전문가도 대거 포진시켰다. 기업 살리기, 이젠 말이 아닌 실천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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