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김범석 의장 끝내 불출석
한때 삶의 파트너로 여겨졌지만
낯선 약탈자의 모습에 국민 공분
쿠팡 사태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중순 3300만명이 넘는 개인정보 유출 소식이 시발점이었다. 정부는 곧장 침해사고로 규정하고 쿠팡에 자료 보전 명령을 내렸다. 이어 관계 부처 합동 조사가 진행되면서, 노동자 사망, 납품업체 갑질 논란까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악한 이용자들은 탈퇴 릴레이에 나섰다. 12월 중순, 국회는 여섯 개의 상임위를 가동하는 이례적인 연석 청문회를 열었다.
그러나 청문회는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불신을 증폭시켰다. 미국 국적자인 쿠팡 임시 대표가 책상을 내리치며 “그만”이라 호통친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셀프 조사와 논란 많은 보상안에 더해, 책임자의 거만한 태도와 김범석 의장의 부재가 사태를 더 꼬이게 했다. 정부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집단소송제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거론했고, 영업정지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경찰 역시 전담 TF를 꾸려 전방위 수사에 착수했다. 사태는 이미 한 기업의 위기를 넘어, 거대 플랫폼과 한국 사회가 맺어온 신뢰 관계의 파탄으로 번지고 있다.
사람들이 극노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빠듯한 삶의 든든한 파트너로 여겨졌던 쿠팡이, 어느 순간 낯선 약탈자로 변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쿠팡은 어느새 한국인의 일상 깊숙이 파고든 새벽 배송을 사업의 중심에 놓았다.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는 마트에 갈 시간을 아끼고,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었다. 새벽 배송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바쁜 도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가성비까지 더해지며 사람들은 쿠팡을 신뢰했고, 의존했다.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분노는 통제 불능으로 치달았다.
쿠팡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글로벌 기업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삶만큼은 누구보다 정밀하게 읽어냈다. 새벽에 물건을 받아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하는 촘촘한 일상, 나 하나 굼뜨면 전체가 꼬인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삶 말이다.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새벽 배송 모델은 이 바쁜 한국인의 생활 리듬을 읽어낸 결과였다. 쿠팡은 그 이해 위에서 성장했고,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돈을 벌 때는 한국인의 정서를 그렇게 잘 알던 기업이, 사과해야 할 순간에는 그 정서를 소름 끼칠 정도로 외면했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사과는 법적 책임의 유무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인정과 겸손, 그리고 상처받은 감정을 어루만지는 태도다. 그러나 이 결정적 순간에 쿠팡의 창업주 김범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형식적인 셀프 조사와 어설픈 보상안만 반복됐다. 한때 고단한 삶을 함께 일구던 파트너라는 믿음은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윤리의식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의식하며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물류 노동자에게 “시급제 노동자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이 던져졌다. 한국인의 습성과 정서를 여지없이 짓밟은 말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쿠팡 물류센터에 만연한 구조적 과로와 허술한 안전관리였다. 이 죽음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반복돼 온 노동인권 침해의 결과였다.
매출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올리는 기업이라면, 한국인의 눈높이와 감정선을 끝까지 존중해야 한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태도는 본질을 비껴간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의 책임은 법 조항을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제도가 미진하다고 느끼는 순간, 시민들은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들이민다. 불매와 손절이 순식간에 조직되는 이유다.
쿠팡과 함께 살아온 소비자들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다. 이들은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프로슈머이자 팬덤 소비자다. 그 신뢰가 깨지는 순간, 지지는 곧바로 분노로 바뀐다. 쿠팡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남고 싶다면 선택은 분명하다. 책임 있는 최고 의사결정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법의 최소선이 아니라 정서의 기준에서 사과하고,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근본적 대책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아직 기회는 있다. 그러나 시간은 쿠팡 편이 아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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